2014년 9월 16일 화요일

유럽 중앙은행의 쿠데타



매년 8월 하순, 여름휴가의 막바지에, 미국 록키산맥 인근의 휴양지인 와이오밍 주의 잭슨 홀에는, 미 연방은행과 각국의 금융 당국, 민간 금융계 등의 경제정책 입안자가 모여, 경제정책에 대해 논의하는, 칸사스 연방은행 주최의「잭슨 홀 경제 회의」가 열린다. 세계 금융계는, 그 회의 이후의 세계 금융시장의 동향을 시사하는 것 회의로 인식하고 매년 동 회의에서 나오는 미 연방은행 간부들의 발언에 주목한다. 금년은, QE3(달러를 증쇄해 채권을 매입해 두는 금융완화책)를 줄여나가고 있는 미 연방은행이, 언제부터 금융 긴축(금리 상승)으로 전환할 것인지가 주목받았으나, 그 부분에서는 눈에 띄는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Today's Mindless Rally: Its Jackson Hole, Stupid!)

금년에는 오히려, 지금까지 매년 동 회의에 초청되던 대형은행의 저명 어널리스트 등, 민간 금융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초청되지 않았던 점이 주목을 받았다. 미 연방은행의 이사회 내에서, QE의 속행을 둘러싸고 내부분규가 발생해, QE의 속행을 바라는 금융계 대표들이 잭슨 홀에 초대되면, 연방은행의 분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미 연방은행 내에서 QE에 반대하는 세력이, 민간 금융계 인사들을 초청하지 않은 것이다. (Wall Street Cut From Guest List for Jackson Hole Fed Meeting)

그런데, 금년 잭슨 홀 회의에서는 그 이상으로 주목을 끈, 게다가 그것이 뜻밖의 인물로부터 던져졌다. 게스트로 참가한 유럽 중앙 은행(ECB, 유럽 중앙 은행)의 마리오・드라기 총재가, 연설에서, 연설 원고에 쓰여 있지 않은 발언으로, 유럽은 디플레이며, 경제성장도 특별조처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유럽 중앙 은행은 유로를 대량 발행해 채권을 매입하는 QE를 해야 한다고 표명한 것이다. (Draghi approaches his Abenomics moment)

QE는, 디플레 대책이나 경기대책을 이유로 금융계를 구제하기 위한, 통화 과잉 발행에 의한 채권 매입해 두기 정책이다. 유럽 중앙 은행은, 절약 중시와 인플레 적대시 정책을 취하는 독일 연방은행의 흐름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미 연방은행이나 일본은행이 해온 QE에 반대하는 의견이 강했다. 이번 봄에 들어서, 디플레상태에 저성장이므로 QE를 실행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남 유럽 제국등에서 나왔지만, EU의 사실상의 맹주인 독일이 반대해 실현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메르켈과 사이가 좋아야 할 드라기가 연설에서 갑작스럽게 QE의 필요성을 언급했기 때문에, 금융계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유럽 중앙 은행의, 독일에 대한 쿠데타와 같았다. 드라기의 QE발언은, 유럽 중앙 은행 상층부에 있는 독일세력 등이 사전에 체크하는 드라기의 연설 원고에는 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전에 준비된 연설 원고에는, QE의 완화책과 역방향인, 유로 제국의 재정긴축의 필요성을 줄곧 주장하고 있었다. 드라기는 연설에서, 원고에 따라 독일이 선호하는 긴축론을 길게 언급한 후, 주어진 원고에서 벗어나 자신의 발언으로 디플레와 QE의 필요성에 대해 단호하게 발언했다. 이것은 그야말로 독일에 대한 반역이었다. (Eurozone: Draghi's new deal)

드라기의 발언은 너무나 당돌했기 때문에, 환시세에 단기적인 영향을 주기 위한 립서비스가 아닐까라고도 생각되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드라기가 유럽으로 돌아온 후인 9월 4일, 유럽 중앙 은행은 민간 유로 기준의 자산 담보 채권(ABS)을 매입하는 사실 상의 QE책을 10월부터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유럽 중앙 은행은 같은 날 금리인하도 실행해, 은행에 대한 대출금리를 0・15%로부터 사상 최저인 0・05%로 인하해 실질적으로 제로금리를 단행했다. (Draghi's Case For Quantitative Easing in Europe)

중앙은행인 유럽 중앙 은행에 의한 ABS 채권 매입은, QE 그 자체다. 유럽 중앙 은행은「미 연방은행의 QE가 미국채도 매입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우리는 국채를 매입하지 않고, 민간 ABS만의 시세 유지이기 때문에 QE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드라기 자신은, 기자로부터 QE의 정의에 대해 질문을 받고「(중앙은행이) 은행에 대한 융자의 담보로 자산(채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은행으로부터 자산을 매입했을 경우가 QE다」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정의라면, 유럽 중앙 은행이 ABS를 매입하는 것은 QE가 된다. (ECB cuts rates, buys assets, skirts quantitative easing question)

드라기나 유럽 중앙 은행이 QE라는 말을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독일과 프랑스, 특히 독일이 QE 발동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중앙 은행이 금리인하와 ABS 매입을 발표한 직후, 독일 연방은행의 총재는, 이러한 정책이 시기 상조라고 말하고, 반대를 명확하게 표명했다. (Bundesbank Chief Opposed ECB Rate Cuts and Planned Asset Buys)

9월 12일에는 드라기가, 유럽 중앙 은행이 매입해 두는 채권의 대상을, 리스크가 높은 저등급 설정의 민간채권(ABS)까지 확대하고 동시에 유로권제국이 이러한 채권에 정부의 채무보증을 서줄 것을 제안했다. 버블 붕괴의 염려가 큰 고리스크 채권을 매입해 두는 것으로, 오고야 말 채권 버블의 세계적인 붕괴를 재고하려고 하는 책략이다. 독일 연방은행 총재는 이에 대해서도「금융계가 가지고 있는 채권의 리스크를 납세자(정부)에게 전가하는 것이므로, 지지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대했다. 이러한 독일 연방은행의 태도는 정직하다. ABS에 대한 채무보증에는 프랑스도 반대하고 있다. (Bundesbank's Head Says Against Public Guarantees for Asset-backed Securities )(Draghi Plea for ABS Support Rebuffed by France, Germany)

독일에서는 금융 당국 뿐만이 아니라, 정계와 언론계도 유럽 중앙 은행의 완화책에 반대를 강하게 하고 있다. EU통합으로 독일이 남 유럽 제국이 낭비한 댓가인 청구서를 자국이 지불하게 되는 것에 반대하고, 지지세를 확대하고 있는 반유로 정당인 「독일을 위한 선택사항(AfD)」 은「유럽 중앙 은행의 금리인하로 독일국민의 예금 금리 수입이 줄어 든다」「중앙 은행에 부여된 권한은 인플레 대책 뿐으로, 이러한 경기대책은 월권 행위다」 「채권 매입책은, 무리하게 채권을 매입한 금융계의 실패가 초래한 청구서를 납세자에게 지불하게 하는 것이다」라며, 유럽 중앙 은행의 책략에 맹반대하고 있다. (Many Germans fear that the European Central Bank is not on their side)

독일 메르켈 수상의 측근은, 유럽 중앙 은행에 의한 채권 매입을「정크상태인 채권을 매입하는 위험한 수법」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마찬가지로 이 비난은 올바르다. ABS는, 많은 채권을 한데 묶은 뒤, 파탄시에 반제 순위가 높은 것(저금리), 중간 정도의 것, 낮은 것(고금리)이라는 식의 명확하지 않은 등급설정으로 파는 채권으로, 2008년의 리만 사태 전에, 반제 순위가 높은 채권은 안전하다고 인식되었지만, 리만 위기로 이러한 안전을 보증하던 등급설정에 대한 신화가 붕괴되어, 등급설정에 관계없이 ABS의 대부분이 고리스크라는 것이 드러났다. (Merkel Ally Slams Draghi's Plan To "Buy Junk Paper")

2011년부터 시작된 남유럽의 국채 위기에 즈음해 EU에서는, 재정 파탄 직전인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국채를, 재정에 여유가 있는 독일 등이 매입해 달라는 요청을 매우 강하게 했다. 독일 여론은 당연히, 남 유럽의 방탕한 재정 청구서를 독일이 지불하게 되는 것에 반대해, 국채 매입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드라기가, 국채 매입을 포함하는「QE」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독일은, 이탈리아 사람인 드라기가, 유럽 중앙 은행을 움직여 남유럽 제국의 국채를 독일에게 매입하게 하려 하고 있다고 경계하며,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Merkel unhappy with Draghi's apparent new fiscal focus - Spiegel)

드라기는 2011년부터, 이미 3년 동안이나 유럽 중앙 은행의 총재를 맡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그는, 지금의 타이밍에 맹주인 독일의 방패를 찌르는 쿠데타를 시작했는가. 그것을 푸는 열쇠는 필시, 드라기가 쿠데타를 발동한 장소, 즉 미국에 있다. 미 연방은행의 시점에서 보면, 드라기가 독일의 방패를 찔러, 유럽 중앙 은행이 QE를 시작해 주는 것은, 미국 패권의 원천이 되어 있는 달러와 미국채, 채권금융 시스템의 연명에 도움이 된다.
리만 도산으로 채권금융 시스템이 무너져 가고 있는 이래, 미국은, 재정 적자를 늘려, 달러를 과잉 발행하여, 너덜너덜 해진 시스템을 연명해 왔다. 독일은행에 의하면, 세계의(미국 주도의)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근의 금융 버블 팽창은 불가피한 것이 되어 있다. (국제적인 대형은행이 이런 일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경이로움이다)(Deutsche Bank: The Bubble Must Go On To Sustain The "Current Global Financial System")

미 정부가 더 이상 재정 적자를 늘릴 수 없게 되어, 달러의 과잉 발행(QE)도 연방은행이 한계에 직면하게 되면, 미국은, 자국이 말하는 것을 뭐든지 듣는 대미 종속의 일본에게, QE와 재정 적자 확대책을 명령해 따르도록 시켰다. 그리고 아베 정권이 QE나 적자 확대를 시작하면, 국제 매스컴은 이것을「아베노믹스」라고 예찬해준다.

그러나, 일본의 확대책도 머지 않아 한계에 다다른다. 최근, 엔의 환율이 달러와 인민원 등에 대해 하락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본은행이 엔을 과잉 발행한 QE의 결과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의 무역이 수출 초과(흑자)라면 엔하락은 수출 경쟁력을 증가시키지만, 지금과 같이 수입 초과라면, 엔하락은 수입 가격의 가격 상승을 초래해, 그에 따른 악영향이 커져, 국부의 감소, 물가의 상승, 국민의 빈곤화로 연결될 수도 있다. 미국은, 자국의 달러와 채권을 연명하기 위해서, 일본에게는 자멸적인 QE를 하도록 시키고, 그것을 국제 선전 기관들을 동원해「좋은 정책」이라고 왜곡 선전해 왔으나, 결국 일본의 QE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는, 국민이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에 QE로 일본의 부를 낭비해 사체가 된 일본 경제만 남을 것이다. 언론계는, 일본 경제의 현상에 대해 왜곡된 것만 보도하고 있다. 일본인의 상당수는 앞으로 자국에게 무엇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모르는 채, 경제 붕괴가 진행될 것이다. (일본은 사람들의 단일성이 강하고, 사회적으로 붕괴하기 어렵기 때문에 혼란이 적다. 따라서, 조용히 쇠퇴해 갈 것이다)

일본이 미국의 요구를 맹종해 한계에 다다르면, 그 다음으로 미국이 달러 연명을 위해 자멸적 협력을 요구할「동맹국」은 유럽이다. 드라기가 8월 말부터 밝힌 완화책은, 금융완화(QE), 재정 적자 급증, 경제구조의「개혁」(미 기업 참가에 규제 완화 등)으로서,「세개의 화살」이라는 경제 정책으로 성립되고 있는 아베노믹스의 내용과 거의 유사해「드라기노믹스」라고 불리고 있다. (Economists hail birth of `Draghinomics')

드라기는, 맹주 독일의 입장에 따라 재정긴축의 필요성을 답습하면서도「감세 등에 의해 경기를 자극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드라기는 경제개혁의 필요성도 주장하고 있어, 미국이 원하는 달러 연명(QE)과 재정을 사용한(미국이 할 수 없는 만큼의) 세계경제 특별조처, (미 기업을 위한) 구조개혁이라고 하는「(미국에 헌신하는) 세 개의 화살」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Pushing EU governments to spend, Draghi appears to change course)

미국의 고관들은, 잭슨 홀에 온 드라기에게, 독일에 거역해 드라기노믹스를 추진해 달라고 부탁해, 성립되었을 것이다. 드라기는 중앙 은행 총재를 그만둔 후, 이탈리아의 대통령이나 수상이 되려는 의지가 있다. 작년,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전 수상이, 드라기가 이탈리아 대통령이 되고자하면 지지할 것이라고 표명하고 있다. 드라기가 이탈리아의 지도자, 나아가서는 EU의 지도자가 되는 것을 노리고 있다면, 미국이나 미 금융계의 후원자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미국이 드라기의 정치적 야심을 지원하는 담보로, 드라기가 유럽 중앙 은행을 이용해, 미국의 달러 연명에 협력한다는 비밀 협정이 맺어져도 불가사의하지는 않다. (Berlusconi says would back Draghi as Italy president; ECB demurs)

드라기는 잭슨 홀에 가기 전인 8월 중순, 이탈리아의 레인지 수상과 비밀리에 만나, 이탈리아 경제의 재건과 경제개혁에 대해 협의했다. 드라기는 레인지에게「지금부터 유럽 중앙 은행이 완화책을 실행할 것이므로, 그 흐름에 따라라. 그 대신, 일단락되면 내가 수상이 되어」라고 했을 지도 모른다. (Italy's Renzi, ECB's Draghi hold 'secret' meeting as economy slides)

드라기가 QE를 실행하겠다고 표명한 후, 미국과 영국의 국제 매스컴이 드라기의 실행을 칭찬하는 기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마치 아베노믹스 개시 때와 같은, 선전 기능의 시동을 느끼게 한다. (Mario Draghi's vision for eurozone growth)

미 연방은행이 드라기에게 반독 쿠데타를 하게 만들고, 유럽 중앙 은행에게 달러 연명을 위한 QE를 하게 하는 이 책략은, 그대로 성공할 것인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유로권 최대의 경제력을 가진 독일이 불참하는 상태라면, 유럽 중앙 은행은 주요한 정책을 실행할 수 없다. 독일이 찬성・참가・협력하지 않는 한, EU는 대규모의 경제정책은 할 수가 없다. 또한 경제정책 면에서, 프랑스는 독일에 반대하지 않는다. 독.불이 반대하면 EU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EU의 정치역학이다. 때문에 드라기의 QE 정책은, 초기 단계의 소규모 채권 매입은 가능할 지라도, 그 이상으로는 불가하다. (Mario Draghi cannot launch QE without German political assent)

일본에서는 아베 정권이, 미국에게 명을 받아 QE를 개시할 때, 자멸적인 QE에 반대하던 일본은행 총재들을 계속 경질해, 아베를 조종하는 관료 기구의 주도 세력의 하나인 재무성 출신의 쿠로다가 일본은행 총재로 발탁되어 QE를 개시했다. 그러므로 쿠로다는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EU가 드라기에게 준 권한의 범위가, 통화정책에 의한 가격 안정(인플레 회피)으로 한정되어 있다. (Can Mr. Draghi Get Germany To Spend? )

유럽 중앙 은행은 5천억 유로에 달하는 자산 담보 채권(ABS)을 매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유로 기준인 ABS 시장은 달러기준에 비해 매우 작다. 금융기관의 매매 담당자는, 매일의 거래량이 크지 않기 때문에 10억 유로의 채권을 매입하는데 3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시장의 규모에서 봐도, 5 천억 유로의 채권 구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유럽 중앙 은행의 QE는 민간채권만으로는 불충분하고, 유로 제국의 국채 매입을 포함하지 않는 한 비현실적인데다가, 독일이 반대하고 있으므로 국채 매입은 불가능하다. (Why Draghi's ABS "Stimulus" Plan Won't Help Europe's Economy)(ECB's Draghi Sees Ways to Expand Stimulus)

그리스 국채 위기 이래, 남유럽의 국채를(독일의 자금으로) 유럽 중앙 은행이 매입해야 한다는 남유럽 측의 주장에 반론하는 재판이 독일에서 벌어졌다. 이츠 헌법재판소는 금년 2월,  남유럽 국채를 유럽 중앙 은행이 매입하는 것을 EU조약 위반으로 간주해, 독일 연방은행이 중앙 은행의 이 책략에 참가하는 것을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즉 유럽 중앙 은행은 이미, 국채 매입책으로 독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향후, 유럽 중앙 은행의 QE책 자체에 대한 위헌성(EU조약 위반성)을 묻는 재판도 예정되어 있어 제소와 함께 QE는 법적으로도 독일의 지지를 얻을 수  없게 된다. (Mario Draghi cannot launch QE without German political assent)

이번 건을 독일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독일주도의 EU 금융정책에 개입해, 드라기를 부추겨 반독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한 내정 간섭 문제다. 이것은, 2월의 우크라이나 위기 이래 급감하고 있는 독일의 미국에 대한 신뢰를, 한층 더 떨어뜨리는 것으로 연결된다. 독일은 미국의 개입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유럽 중앙 은행의 주도권이 독일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야 할 필요성에 몰리고 있다. 미국으로부터의 재개입을 막기 위해, 중앙 은행에 대한 독일의 고삐는 강하게 조여질 것이다.

이번 건은, 미 정부의 신호 감청 기관인 NSA가 독일 고관들을 염탐하던 도청 건이나, 독일이 껄끄러워 하고 있는 미국의 바보스러운 우크라이나 개입책과 함께, 독일이 미국의 패권하에서 나와 EU를 이끌어 자립해가는 움직임을 강하게 만드는(다극화를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 최근에는, NSA 등 미국과 영국의 첩보 기관이 독일의 전화 회사를 도청해 비밀리에 통화기록을 빼내고 있던 사실이 독일 잡지에 의해 폭로되어 독일이 미국에게 멀어지게 하는 흐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US, UK spying on German telecom)

우크라이나 위기는, 독일과 러시이가 협의해, EU가 우크라이나와의 경제 협정 체결을 연기할 것을 결정해 사태의 안정화로 향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미국이 관련되지 않고, 유럽(독.불.) 이 직접 러시아와 교섭하는 편이 훨씬 사태 해결이 잘 되어간다. 여론 조사에 의하면, 이미 EU의 사람들의 반은, EU가 미국에 개입하지 않고 국제 문제에 임하는 것이 좋다고 대답하고 있다. (EU-Ukraine integration pact postponed till 2016 after talks between Moscow, Kiev & Brussels)(Half of Europeans want to tackle international issues without US meddling)

미국의 상층부는, 유럽 중앙 은행이 독일의 지배하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드라기(정치적 야망을 부추켜)를 속여 QE를 실행시키는 책략은 잘되지 않을 것이라고 사전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 연방은행은 드라기를 이용해, 독일을 격노시켜 미국에게서 벗어나게 할 방향으로 기울게 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방식은, 역시 그림자 다극주의적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만약 9월 18일,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결정하는 주민 투표에서 독립 지지가 승리해, 영국과 스코틀랜드로부터의 자금 도피가 커지면, 그 영향이 유럽 대륙으로 파급하는 등, 유럽의 금융이 대혼란이 생기게 되면, 드라기의 쿠데타는, 독일을 시험하는 새로운 국면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영국으로부터의 자금 유출은, 이미 리만 도산 후, 최고 금액이 되었다. 스코틀랜드 투표의 영향이 아니라면, 그 후의 무엇인가 다른 계기에 의해 유럽 금융계는 혼란에 빠질지도 모른다. 사태는 아직 움직이고 있다. (UK Suffers Biggest Capital Outflow Since Lehman As Scottish Vote Nears)


패권전환의 기점, 911사건을 다시 생각한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하이재킹된 여객기가, 뉴욕의 세계 무역센터빌딩(WTC)과 워싱턴 DC의 국방성(펜타곤)으로 돌진했던 911 사건이 일어난지 13년이 지났다. 그 사건은, 불가해한 수수께끼가 얼마든지 있다. 대부분은, 지금도 수수께끼인 채로다. 빌딩에 돌진한 물체가 하이재킹된 여객기였는지 어떤지 조차 불확정이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사례를 든다. 보통은 일어나기 힘든 미국의 방공 경계 태세가 그날 만 없었다는 사실. 항공기가 돌진해도 WTC 빌딩의 철골은 무너지지 않을 것인데 통째로 붕괴해 버린 사실. WTC의 붕괴 방법이 폭탄에 의한「제어 해체」와 거의 똑같은데 미 당국은 이 폭파설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는 사실. WTC 붕괴뒤 수시간 후, 근처의  WTC 7 빌딩이 돌연 완전 붕괴한 사실. 국방성에 뚫린 구멍이 항공기보다 훨씬 작았던 사실(여객기가 아니라 설치형 폭탄일 가능성). 두대의 비행기의 블랙 박스가 발견되지 않은 사실. 범인의 전모가 불투명한 사실(실행범이 여러 명이라는 것은「착각」). 알카이다에게는 실행범 조직으로서의 실태가 없다는 사실 등, 조금 생각한 것만으로도 끝이 없을 지경이다. (9.11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 9개의 수수께끼)

911 사건 후, 무수한 미스테리가 인터넷 상에서 영문으로 지적되었다. 나는, 이러한 정보를 가능한대로 모아 읽고, 사건의 미스테리한 전모를 몇 회인가의 기사로 나누고 쓰고, 인터넷으로 전파했다. 그것을 책으로 정리해 02년 4월에 PHP 연구소로부터「조작된 9・11」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그 후, 911의 수수께끼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음모론」이라고 여겨져「좋지 않는 것」「잘못된 행위」라고 보는 경향이 일・미 등의 언론계에서 강해졌다. 보수적인 출판사인 PHP의 운영부는, 출판한 후에야  불량한(?)서적을 출판했다는 것을 느꼈는 지, 본서는 서서히 절판되었다(팔리지 않았으니까 절판이 되었다는 반론이 있겠지만).
절판이 되고 10년 정도가 지나, 본서는 더 이상 거의 구입할 수 없게 되었지만, 거기에 쓴 의문점의 대부분은 지금도 해명되어 있지 않다.

911은 역사의 전환점으로서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본서의 내용을 공개해 두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므로, 내가 쓴 초고를 인터넷에 공개하기로 했다. (짜진 9・11)

이 공개는, 몇년 전부터 하려고 생각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하지 않았었다. 「13주년」을 노려서 공개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공개는 했지만, 참고 문헌의 URL이 기능하지 않게 되는 등,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HTML 태그를 최저한으로 만 달았다. 처음 단락도, 완성된 서적의 것과는 일부 차이가 난다.

미국에서는 매년 9월 11일이 가까워지면, 911 사건의 미스테리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금년은 론・폴 전 하원의원이, 부시 정권은 사전에 테러 사건의 발생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막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발언하고 있다. 이 건은, 사건으로부터 2개월 후에 이미 미국에서 지적되었었고, 나도 당시에「테러를 일부러 막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기사를 썼을 정도로, 매우 기본적인 미스테리 중의 하나다. 이렇게 911은, 기본적인 수수께끼조차 풀리지 않았다. (테러를 일부러 막지 않았던 대통령)(테러의 진행을 막지 않았던 미군)
03년의 이라크 침공을 둘러싸고, 침공의 명분이 된「이라크의 대량 파괴 무기 보유」가 미 정부에 의한 거짓말이라는 것이 사전에 지적되어, 이라크 침공 후, 미 정부도 거짓말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이란이 핵병기 개발하고 있다는 비난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만든 누명이라는 것이 관계자 사이에서 상식이 되고 있다. 작년 여름, 시리아에서 화학 병기에 의한 시민 살상을 한 것이 정부군이 아니라는 것도,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말레이지아 기를 격추한 것도 우크라이나 군이라는 것도 폭로될 것 같다.

예를 든, 비교적 약한 이러한 선전에 의한 사실 왜곡과는 달리, 911의 수수께끼 만은, 몇 년이 경과해도 드러나야 할 진실이 좀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의 핵심부는, 911사태의 진상이 밝혀지는 것을 전력으로 차단하고 있다. 공식적인 이야기(사실)가 되지 않고 「음모론」에 머무르는 한, 진상은 확정할 수 없다.

이라크나 시리아나 우크라이나의 사건은, 많은 미국민으로부터 인연이 먼 외국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911은 미국 내에서 일어나, 당시의 모든 미국민에게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므로 미국의 핵심부는, 진상의 폭로를 전력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향후 만약 911의 진상이 폭로되면, 정부에 대한 미국민의 신뢰가 격렬하게 저하해, 정치적인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911 이래, 테러 대책 등을 구실로 한 억압이나, 빈부 격차 증대의 방치, 위법 이민의 말도 않되는 용인 등, 미국을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하게 하는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 이 흐름이 의도된 배후의 전략이라면, 911를 둘러싼 진상의 폭로도, 미국이 더 혼란에 빠져「그것이 미국의 몰락을 결정적으로 부추키는 방아쇠」가 될지도 모른다. (이민 위기를 부추기는 미국 정부)

911은 수수께끼 투성이지만, 911이 가지는 역사적인 중요성은 수수께끼가 많다는 것에 있지 않다. 911의 중요성은, 그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패권 전략이「국제 협조 주의」로부터 「단독 패권 주의」로 크게 전환한 것이다.

국제 협조 주의란, 패권국인 미국이, 유럽이나 호주 캐나다(영국계 제국) 등 동맹 제국(선진 제국)의 의견을 들으면서, 국제적으로 협조해 세계를 관리(운영, 지배, 패권 행사)하는 방식이다. 유럽이나 호주 캐나다는, 세계 운영 시에 가능한 한 무력행사를 하지 않고, 외교나 경제 제재로 운영해 나가려는(그 쪽이 효율적이라고 여김) 것으로, 국제 협조주의는 외교를 중시하는 것이다.

동맹 제국 중에서 영향력이 강한 것은, 제2차 대전까지의 패권국으로, 패권을 미국에게 양도한 영국이다. 국제 협조주의는, 영국이 동맹 제국의 이름을 빌려 미국의 패권 전략을 좌지우지하는「미국과 영국 중심 주의」이다. NATO나 G7 등, 미국과 영국+ 불 독 일본과 이태리+ 캐나다라는 구조가 되어 있는 조직이 바로 그것을 중시하는 국제 협조적 조직체다. 이러한 영국의 세계 전략은, 미국, 유럽, 호주 일본 등 유라시아 주변부의 해양 제국이, 러시아나 중국 등 유라시아 중심부의 대륙 제국을 포위하는「지정학」적 공격이며, 그 구도를 통해 냉전이 40년 이상 계속되었던 것이다.

(국제 협조주의는 외교 중시지만, 미 정계에서 영향력이 강한 군산 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영국은 전후, 미소가 장기적으로 군사 대립하는 냉전 구조를 만들어 주었다. 따라서 냉전 종결까지, 영국과 군산 복합체는 동료였던 셈이다)
대조적으로 단독 패권주의는, 동맹국의 의견 등을 듣지 않고, 미국이 독단으로 세계 운영을 해 나가는 방식이다. 미국의 상층부(정계)에서는, 군산 복합체(국방성과 군수산업)와 이스라엘(AIPAC 등 우파 로비)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에, 단독 패권주의는「전쟁」과「중동」이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군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에「뭐든지 전쟁으로 해결해야 한다」가 되고, 이스라엘 세도 강하기 때문에「(이스라엘에게  위협인) 중동의 독재 정권을 차례로 전쟁으로 전복해 민주화 하자」라는 모양새의 전략이 추진된다. 따라서, 국제 협조주의였던 911 이전의 클린턴 정권은, 영국과 사이가 좋았지만, 911 후에 단독 패권주의를 채택한 부시 정권은, 완전히 변해 영국에게 냉담해졌다.

911 사건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관련 보도를 그대로 믿고「알카이다가 미국을 적대시해 일으킨 테러 사건이며, 미 당국은 무능해서 막을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고 해도, 미국이 단독 패권주의로 전환한 것은 불가해하다.

그러한 전략의 전환이 테러 대책에 대한 효율성이 높아졌다면 합리성이 있겠지만, 이 건은 그렇지도 않다. 911 후,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스페인, 인도 등, 미국의 동맹 제국에서도 이슬람교도에 의한 테러가 일어났으므로, 오히려 국제 협조주의였던 편이 더 효율적으로 테러 대책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911 후의 테러 대책이 형편상 좋았기 때문에 단독 패권주의로 변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 전략을 단독 패권주의로 전환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미국의 핵심부에서 먼저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911이 일어나(유발되어) 그 충격을 이용해, 단독 패권전략으로의 극적인 전환이 발생되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단독 패권주의로 전환한 후에 수행한 최대의 움직임은 03년의 이라크 침공인데, 911과 이라크 침공은 본질적으로 관계가 없다. 미국이 911의「범인」이라고 지목한 알카이다는 이슬람주의를 신봉하지만, 이라크 침공으로 무너진 후세인 정권은, 이슬람주의를 싫어하는 세속주의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장했던 대 테러 전쟁이라는 관점에서라면, 미국은 후세인 정권의 이라크를 무너뜨릴 것이 아니라, 반대로, 화해해 미국의 테러 대책에 협력을 받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911의 발생으로부터 3일 후에는, 부시 정권 내에서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내정되어 있었다. 이것은, 후세인 정권을 무력으로 무너뜨리려는 이라크 침공 구상이 먼저 있었다는 것이고, 911은 그것을 실행할 계기로서 사용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국제 협조주의(외교 우선, 영국이 배후)와 단독 패권주의(군사 우선, 이스라엘이 배후)와의 상극은 911보다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냉전 구조가 국제 협조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은 이미 말했는데, 냉전 구조는 사실상, 1985년의 미국과 영국이 동시에 행한 금융 자유화와 프라자 합의(관리 시세제의 확립)로 끝났다.


미국과 영국 주도의 동맹 제국이 소련을 적으로 삼고, 국제적으로 협조하는 지금까지의 전략이 조용하게 방폐되고 그 대신, 미국과 영국이 국제 금융 자유화(채권금융 시스템의 확대)에 의해 번영하는 경제 패권의 시대가 왔던 것이다. 그리고 5년 후, 미국이 소련과 화해해, 냉전이 끝났고, 90년 대의 클린턴 정권은 경제를 앞세워, 군수산업은 합리화를 피할 수 없게(냉전의 종료로 전쟁특수가 사라졌으므로) 되었다.

따라서, 영국에 의해 버려진 군산복합체는, 미 정계 내의 이스라엘계 세력과 결속해, 재기를 노렸다. 클린턴 정권은, 93년의「오슬로 합의」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해 이스라엘에게 경제발전이라는 혜택을 주어 수중에 넣으려고 했지만, 이 정책에 찬성해 그것을 추진하던 이스라엘의 라빈 수상이 95년에 암살되면서 도중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어서, 군산 복합체는 클린턴 정권을 움직여, 소말리아나 수단,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인근에 위치해 있고 내전상황에 빠져있는 국가로 미군을 지상군으로 투입시켜, 점령의 수렁을 유발해 과거의 돈벌이를 부활하려고 했지만, 클린턴은 소극적이었다. 그러자, 군산 복합체와 이스라엘 우파는, 클린턴과 백악관 인턴인 모니카・르인스키(유태계)와의 성적 스캔들을 98년에 폭로시켜, 클린턴을 궁지에 몰아넣고 중동 지역에서의 전쟁을 승낙시키려고 했지만, 이 역시 제대로 되지 않았다.
군산 이스라엘 복합체로부터의 압력을 받은, 클린턴은 93년에 강경파인 마데레인・올브라이트(유태계)를 국무장관으로 앉혔다. 그녀는 911 후에「악의 주축」의 전신이 되는「불량 국가」라는 개념에 근거해, 이라크, 이란, 시리아, 수단,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등을 적대시해,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을, 소련을 대체할 수 있는 미국의 적으로 만드는 흐름을 시작했다.

위와같이 90년대는, 미국과 영국 패권의 중심이 군사로부터 경제로 옮겨가, 군산 복합체 세력이 열세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97-98년의 아시아 통화 위기나, 2000년의 미 IT 주식의 버블 붕괴에 의해, 금융계의 급성장으로 미국과 영국이 금융 패권을 유지하던 냉전 후의 세계 체제가 무너져 내렸다.

01년에 대통령이 8년 동안 계속된 민주당의 클린턴으로부터 공화당(군산 복합체의 옛 터전)의 부시로 바뀌어, 당초는 부시도 민주당의 협조 노선을 계승해「상냥한 초강대국」을 자칭하고 있었다. 그러나 머지 않아 911 사건이 일어나자, 미국의 패권 전략의 중심이 단번에 경제로부터 군사로 되돌아가, 영국 배경의 국제 협조 주의는, 군산 복합체와 이스라엘 배경의 단독 패권주의로 교체되었다.

다시 말해서 911을 계기로, 미 핵심부에서는 패권전략을 둘러싼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911사태로 단독 패권주의 천하가 되었지만, 당연히,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단독 패권주의에 의해 미국은, 군사・외교・경제라는 모든 면에서, 패권국으로서의 힘을 급속히 낭비했다. 90년 말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융 붕괴도, 2000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담보 채권 버블의 확대를 거쳐, 07년에「서브 프라임 위기」라는 버블 붕괴가 시작되어, 그것이 08년의 리만 위기로 연결되었고,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붕괴를 전제로, 브레톤우즈 체제의 새로운 편성이, 신설된 다극형 패권 구조인 G20에 의해 제창되었다. (세계가 달러를 버린 날)

911로 부터 13년이 지나 이제 단독 패권주의라는 개념은 낡은 것이 된 분위기가 있다. 오바마 정권은 미국을 국제 협조주의로 되돌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냉전이 국제 협조주의 전략이었다고 하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위기를 만들어 내, 냉전형의 미러 대립을 격화시켜 NATO를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도, 국제 협조주의의 전략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바마 정권은, 패권의 낭비를 막을 수 있도록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미군을 철수했다. 빈 라덴 살해극을 전개해, 원래 선전색이 강했던 명분없는「테러 전쟁」을 끝내려고 획책했다.

오바마 정권은, 911을 기회로 일단 국제 협조주의를 버리고 단독 패권주의로 뛰쳐나온 미국을, 다시 국제 협조주의로 되돌리려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과거의 지점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다. 냉전시에는 미국과 유럽보다 약했던 정세속에서 소련, 중국 등 사회주의 진영은 지금, 인도와 브라질, 이란 등도 추가되어 비미적인 BRICS+ 도상 제국으로서 스스로를 재편・결속해, 미국과 유럽세에 지지 않는 강력한 세력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무조건 미국에 종속되어 소련과 대립하던 독일 등 유럽 제국들도, 이번 우크라이나 위기에서, 러시아와 대립하면 자신들의 경제가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미국의 러시아 적대시에 동조하려고 하지 않는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되고 있는 중국과 본격적 대립하는 것은, 미국조차 바라지 않는다. BRICS의 대국화에 의해, 과거에 있었던 식의 냉전구조의 부활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미국이 냉전 구조를 무리하게 부활시키려고 하면, 유럽이 배신해 BRICS 측으로 붙든 지, 중립으로 변해 버릴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오바마)이 국제 협조주의를 부활시키려고 시도하면, 그것은 세계의 패권구조를 다극화시키는 것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만약 911과 같은 전환기가 없었고, 미국이 단독 패권주의로 변하지 않고 있었다면, 미국 만이 패권국인 종래의 상태를 유지한 채로, 중국이나 러시아를 새로운 산하에 넣을 수 있는 패권을 유지해, 다극화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냉전 이후, G7에 러시아가 들어갈 수 있도록 G8로 구성한 것은, 바로 그러한 흐름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중국을 끌어 들여 G9로 만들어 안정적으로 운영했더라면, 미국의 패권은 앞으로 백년 정도 더 계속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게 현명한 책략을 취하지 않았다.

지금의 일본인들은 혐중 반중을 강조하는 언론의 선전에 물들어 있으므로, 러시아 뿐만이 아니라 중국도, 미국 패권의 산하에 들어가려고 한 적은 없고, 중국은 미국을 넘어뜨려 패권국이 되는 것만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중국은(부분적으로는 러시아도), 미국이 패권국으로서 강력하게 존재하는 한, 어느 정도는 미국에게 양보해, 친밀하게 해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분노하게 만드는 책략을 반복하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의 패권같은 건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시작해 미국 적대시가 강한 푸친과 결속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하고 있는 것인데, 중국을 화나게 하는 미국의 책략은, 중러가 결속해 미 패권을 경제면으로부터 무너뜨리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연결되므로, 미국 자신에게 있어서 자멸적이다.

미국이 자국의 패권과 이권을 지키고 싶다면, 중국과 협조해, 일본에게 압력을 가해 반중정책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미 종속을 국시로 하는 일본 정부는 미국 패권의 영속을 바라고 있지만, 미국과 일본의 중국 적대시책은, 미국의 패권 붕괴로 연결되므로, 대미 종속에 있어서도 자멸적이다. 미국에게 대 중국협조를 주장하고, 일본 자신도 중국 적대시를 그만두는 것이, 정말 애국적인 일본인이 취해야 할 태도다.

미 정계는 911 이래, 호전파에게 장악되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차기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 같은 민주당의 Hillary・클린턴은 자신을 가능한 한 호전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고, 공화당의 랜드・폴은 이스라엘에게 바짝 다가가고 있다. 호전적이지 않으면 대통령이나 연방 의원이 될 수 없는 상황이,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아직 단독 패권주의라는 족쇄(선전)에 매여 있다. (Rand Paul Suddenly Goes Very Silent On U.S. Airstrikes In Iraq)

수수께끼 투성이인 911은, 필시「어둠의 억새풀밭( 명분,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비유)」이다. 실체가 불명( 실은 CIA가 만든 ) 한「거대한 적 알카이다」가, 911을 일으켜 미국에게 선전포고했다고 하고, 거기에 응전해 미국은「테러 전쟁」이란 이름으로 국가 총동원 체제를 구축해 전쟁을 개시했다. 미국은, 타국의 충고를 듣지 않는「단독 패권주의」라는 모드로 자신의 입장을 일시에 바꾼 다음, 어둠 속의「억새풀밭」으로 쳐들어가, 들판의「억새풀」과 싸운다고 선언하고, 이라크, 아프간, 이란, 시리아, 리비아, 북한, 러시아, 중국 등을 차례차례로 적대시했다. 지금 이라크와 시리아에 생겨난 ISIS(이슬람국가)도, 미국 자신이 재배(만든)한 새로운「억새풀」일 것이다. 그런 끝에, 미국은 국력을 낭비하고, 경제면으로도 거대한 버블 팽창에만 의지해 달러의 힘을 유지하고 있다. (쿠르드와 이슬람국의 강요 전쟁)

911로 미국이 자신에게 씌운「어둠의 억새풀밭」이라는 마술은 아마, 머지않아 도래할 달러와 미국채의 버블 붕괴에 의해 풀릴 수 있다. 미국이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달러와 미국채는 힘을 잃고, 미국은 패권국이 아니게 되어, 세계의 패권 구조는 다극형으로 전환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아직, 연방은행과 금융계(채권발행)에 의한 자금 공급에 의해 버블 팽창이 계속 되고 있으므로, 10년 짜리 미국채의 금리는 위험수치인 3% 보다 훨씬 낮고, 모든 통화에 대한 달러의 환율도 여전히 높다. (The World Financial System Is Rife With "Stimulus" Junkies)

그러나, 버블 팽창이 계속되지 않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지적이, 최근 미국과 유럽의 여기저기로부터 나오고 있다. 달러를 기축통화의 자리로부터 스스로 내려 오는 것이 수출증가로 연결되므로 미국 경제는 끝났다라는 논문이, NY타임즈에 실리고 있다. 911로 시작한 미국의 환각증상에 의한 세계의 혼란은, 가까운 시일 내에 끝나게 될 것이다. (Dethrone‘King Dollar')


Jim Willie, 달러를 구하려는 필사적 시도로 미국은 유로 붕괴를 계획

Jim Willie, 달러를 구하려는 필사적 시도로 미국은 유로 붕괴를 계획
(Jim Willie: US Plans to Collapse Europe in Last-Ditch Effort to Save Petro-Dollar!)
2014년 9월 15일, Silverdoctors

그의 최근 파인낸스앤 리버티와의 대담에서 햇트릭 소식지의 편집자인 짐 윌리는 러시아 제재의 고조가 어떻게 유럽과 미국 경제에 영향을 줄 것인지 그리고 독일의 서구에서 파시즘을 저항하는 것이 독일로 하여금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러시아로 향하여 가는 것 그리고 석유 달러를 구하기 위해 필사적 시도로 어떻게 미국이 유럽을 붕괴하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에 대하여 토론했다.




 

론 폴, 스위스는 그들 금을 가져오는데 투표를 할까?

스위스는 그들 금을 가져오는데 투표를 할까?
(Will The Swiss Vote to Get Their Gold Back?)
2014년 9월 14일, Ron Paul

11월 30일, 스위스의 유권자들은 그에 대한 주민투표를 하러 투표소에 갈 것이다. 투표는 스위스 국립 은행이 향후 금을 매각하는 것을 막고 스위스 보유 금을 스위스로 송환하며 금을 스위스 국립 은행 자산의 20%이상으로 확보하는 것을 강제하기 위한 조치이다. 미국,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운동과 유사한 대중적인 정서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이 주민 투표는 스위스 중앙 은행인 스위스 국립 은행에 보다 더 많은 감독과 책임을 안겨 주려는 시도이다.

스위스 주민 투표는 스위스 통화 정책에서 뿐만 아니라 스위스 은행 정책의 행위에 대한 바닥에 흐르는 불만족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지만 독립의 긍지이고 독재에 항거한 역사이기도 하다. 유명한 윌리엄 텔의 이야기는 스위스 국가적 특성의 본질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미국 정부가 했던 것처럼 역사에서 어떤 독재 체재도 스위스를 괴롭히지 못했다.

은행 기밀의 스위스 전통은 전설이다. 하지만 실상 스위스 은행 기밀은 죽었다. 미국과 같은 나라들은 정부 지출이 점검되는 것을 꺼려해왔지만 그들 지출에 자금 조달하는 방법들을 바닥나고 있다. 그들 시민들에 대한 추가 과세는 정치적으로 어려우며 대대적 정부 부채의 발행은 채권 시장을 포화상태로 만들었으며 그래서 쉬운 목표가 세금 피난처로 명성을 얻어 온 스위스 같은 보다 작은 나라들이다. 세금 피난처는 미국과 유럽 연합이 하는 것보다 사람들이 더 많은 자신의 돈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 시민들이나 외국 계좌 보유자들을 약탈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나라에 대한 용어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난 몇 년 간은 미국과 유럽 연합이 보다 더 많은 세수를 끌어내기 위해 그들 엄청난 금융 영향력으로 이들 작은 나라들에게 계좌 상세 내역을 넘기라고 강요함으로써 이들 나라들을 뭉개버리는 공조된 시도가 있어왔다.

미국은 스위스로부터 돈을 강탈하기 위해 그 사법 시스템을 사용하였고 스위스 은행들의 미국 지점들이 미국 납세자들 계좌와 소득을 미국 세무 당국으로부터 감춰지도록 해준 것을 찾아냈다. 독일과 같은 유럽 연합 국가들은 파렴치한 직원들에 의해 스위스 은행들로부터 훔쳐낸 계좌 정보를 매입하는 데에 공헌해왔다.해외 금융 자산 보고 법(FATCA)의 최근 시행과 함께 스위스 은행들은 미국 세금을 내야할 고객들에 대하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들을 이제 미국 국세청에 누설할 수 밖에 없다.

통화 정책 전선에서 스위스 국립은행은 2000년대 동안 스위스 보유금의 60% 가량을 매각하였다. 스위스 국립은행은 최근 몇 년간 1유로에 1.2스위스 프랑으로 통화 고정환율제를 시행하였다. 이 고정 환율제의 효과는 주택 가격이 극심하게 상승하면서 이미 커지는 부동산 거품의 형태로 드러났다. 유럽 중앙 은행이 향후 양적 완화를 하려는 것을 감안할 때 국립은행은의 이런 위험하고 어리석은 정책의 지속은 그 통화 정책을 유럽 연합의 통화 정책에 계속 묶어두는 것이 됨을 의미하며 스위스로 더 많은 인플레이션을 수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연합처럼 연방 차원에서 스위스는 나라의 이익보다는 그들 처지, 안녕 그리고 국제적 명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상위권력층 단체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만약 성공한다면, 금에 대한 주민투표는 그들 상위 권력층의 얼굴에 일격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스위스 사람들은 그들 선조들이 대대적 준비 금, 존경 받는 통화 그리고 강한 독립적 은행 시스템을 쌓은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들은 한 중앙 은행에 의해 분산되는 싸움의 여러 세기들을 보기를 원하지 않고 있다. 11월 주민 투표는 아마도 강한 시민운동이 중앙 은행 책임을 어떻게 확립시키고 통화 기능으로 금을 되돌리게 할 수 있는 것인지를 가리키는, 한 징후가 될 수도 있다.

2개의 5.18재판 비교

       2개의 5.18재판 비교

                                    <1981년의 5.18재판>  
1981년 4월 1일짜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정동년이 김대중에서 500만원을 받아 300만원은 박관현에게, 200만원은 윤한봉에게 주어 학생시위를 주도케 했다” 그러나 정동년은 5월 17일 밤에 잡혀 갔고, 박관현과 윤한봉은 장기간 도망가 있었습니다. 광주의 운동권, 대학생, 교수 등 거의 모두가 시위기간 내내 잠적해 있었습니다. 학생 시위대를 구성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여기에 더해 1심 군법회의에서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당한 사람들은 모두 12명으로 이들은 거의 다 광주에서 천대받던 20대의 사회불만세력들이었습니다. 계엄군이 시 외곽으로 빠지면서 5월 22일부터 전남도청에 처음으로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5월 26일 새벽부터 27일 새벽 1시까지 25시간 동안 객기를 부리다 계엄군의 재진입작전을 초래한 부나비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거의 다 서로 일면식이 없던 콩가루들이었습니다. 광주사태 기간 내내 광주인에 의한 시위대가 없었다는 것을 이 이상 더 잘 증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600명이 이룩한 화려한 업적은 1인당 수십억 원씩의 보상이 가능하고, 노출되면 그들은 모두 영웅으로 아니 사회적 배우로 등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5.18유공자 공적’을 주장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일은 저질러졌는데 저지른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1981년의 정보계통과 재판부는 광주에 광주인들이 기획-연출한 폭동 시위대가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폭동 시위대라면 이동 중인 20사단을 공격한 300명 조직, 44개 무기고를 불과 4시간 만에 턴 600명 조직의 실체, 경찰만 보아도 가슴이 뛰었던 바로 그 순간에 전남대 앞에 서 있는 계엄군에게 감히 돌멩이 공격을 감행하고, 곧바로 중심가로 달려갔던 200명 대학생 집단, 아침 10:30분 금남로 중심가 파출소들을 소각하여 부나비들을 끌어들인 1,000여명 “학생시위대”가 그 핵심일 것입니다. 그런데 1981년의 정보 당국과 재판부는 이 폭동의 실체 중 단 한 사람도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1981년의 재판은 몸통의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고 그래서 몸통은 잡지 못했습니다. 재판부가 잡아놓은 20대 개념 없는 부나비들은 600명이라는 몸통에 붙어 있는 깃털이 아니라, 그냥 광주에 날아다니던 부나비들이었습니다. 20세의 구두공 윤석루는 5.18연극 무대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됐던 ‘기동타격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5월 26일부터 ‘항쟁지도부’ 핵심간부를 맡았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윤석루를 개념 없는 천방지추라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1981년의 재판부는 이런 윤석루에게 무기징역형을 내렸습니다. 윤석루와 같은 계급의 20대들을 5.18의 핵심 범인들이라 판단한 것입니다. 그러니 1981년의 정보기관이나 재판부는 얼마나 허술하였습니까? 국가가 위태로울 지경으로 내몰았던 엄청난 폭동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아니 대한민국의 그 어느 특수부대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었던 폭풍작전이 광풍처럼 대한민국 전체를 흔들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일정기간 대한민국이 통지할 수 없었던 해방구가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작전을 주도한 몸통이 겨우 20세 구두공 등 그와 유사한 20대 부나비들이었다 하니, 이런 기막힌 판결이 어디 또 있겠습니까?

                                        <1997년의 판결>  
1997년 5.18판결문의 핵심은 이러합니다. “광주시위대는 신군부로부터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결집된 준-헌법기관이다. 시위가 전국으로 속히 확산됐어야 했는데 신군부가 이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조기에 진압한 행위는 분명한 내란행위다.”  
위에서 살핀 바와 같이 광주에는 광주인들이 독자적으로 구성한 시위대가 없었습니다. 광주에서 유일했던 시위대는 북한특수군 600여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이들이 동원했거나 이들에 부화뇌동한 철없는 10대와 하층계급의 노동자, 양아치, 무직의 20대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1997년의 판결은 북한특수군 600명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준 세기의 코미디 판결이 된 셈입니다.  
당시 5.18시위는 대한민국을 적으로 한 무장폭동이었습니다. 당시의 당국은 이것이 만일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북한이 남침할 것이라는 정보판단을 하였습니다. 이 판단은 정당하고 합리적인 판단이었으며, 이런 정치 군사적 판단에 대해서는 감히 판검사가 이렇다 저렇다 참견할 사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1997년의 재판부는 ‘전두환 등이 북한으로부터 아무런 괄목할만한 위협이 없었는데도 위협을 과장 확대하여 탄압의 명분으로 삼았다’고 몰아쳤습니다. 이는 엄청난 월권이고 오만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민주화 판사들은 광주폭동을 정의의 사도라고 판단했고, 폭동진압 주체인 국가를 전두환 등에 의해 동원된 내란수단이었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는 1996-97년의 검찰(채동욱이 주역 담당)과 재판부가 북한 편에 서 있었다는 것을 물씬하게 느끼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81년의 재판은 함량미달의 재판이었고, 1997년의 재판은 함량미달은 물론이고, 그 차원을 훨씬 넘어 인민군 판사에 의한 인민재판이었다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4.9.16.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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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비서들의 속 좁은 처사에 주목한다

                청와대 비서들의 속 좁은 처사에 주목한다 

오늘부터 열리는 UN총회는 김정은 등을 국제형사재판소 또는 국제특별재판소에 기소하느냐에 대한 문제를 놓고 미국 등 서방 세계의 호위를 받는 COI의 마이클 커비와 북한 외교부장간의 설전이 불꽃을 튀길 것이다. 이런 시기에 북한이 또 세 번째의 미국인 ‘밀러’를 억류하고 그에게 보란 듯이 6년의 교화형을 내렸다. 미국은 이에 대해 분노하고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한국 검찰이 일본의 산케이신문 지부장을 기소하겠다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정윤회가 4월16일 낮에 어느 한학자를 찾아갔었다는 알리바이를 뒤늦게 발표하면서 박근혜와 정윤회가 중요한 시각에 함께 있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제 곧장 기소를 할 것이라 하는 모양이다. 설사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이런 구차한 이야기는 오히려 검찰에 대한 불신만 키울 것이다.  
이 사건은 청와대의 격노로부터 파급됐다. 검찰이 청와대의 뜻에 따라 이 사건을 드라이브 하고 있다는 것은 아마 국민 대부분의 시각일 것이다. 만일 검찰이 벼르고 있듯이 이 사건을 기소한다면 한국과 대통령은 다 같이 추락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은 인권탄압 1위국, 남한은 2위국이라는 식의 비아냥 꺼리가 될 소지가 있다.  
과연 산케이의 글은 기소의 대상인가? 필자의 독해력으로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과 산케이 보도문(국민일보의 번역본)을 놓고 비교해 보면 최보식 칼럼이 훨씬 더 자극적이고, 더 나쁜 방향으로 상상력을 발휘하게 했다.  
사실 그 중요한 7시간에 박근혜는 청와대 경내에는 있었을지 몰라도 적절한 위치에는 있지 않았다. 적절한 위치란 위기관리실, 집무실, 수석 회의실, 이 세 장소 중 하나일 것이다. 또한 보고과정, 지혜수렴 과정, 명령의 내용들도 적절하지는 않았다. 대통령이 이 중요한 황금시간에 10년 동안 파트너였던 전 개인비서실장과 함께 업무를 처리했느냐에 대한 의혹보다 더 무거운 문제는 대통령이 그 시간에 얼마나 빠르고 안정된 방법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고, 누구들과 함께 지혜를 수렴했는가가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것들을 종합해 보면 대통령은 그 시각에 봉급을 많이 받는 두뇌들과 함께 이 중요한 상황을 처리한 것이 아니라 잘해야 내실에서 일하는 ‘급이 한참 낮은 비서들’과 함께 이 막중한 상황을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작은 문제가 아니다.  
그 엄청난 세월호 사건에 대해 이런 정도의 부적절한 대응을 했으면 그에 대한 국민적 비난도 받아야 하고 의혹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최보식이 제기한 의혹도, 산케이가 제기한 의혹도 다 대통령의 적절치 못한 리더십 행위에 대해 당연히 받을 수 있는 비판의 범주에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산케이보다 더 선정적인 표현은 최보식 칼럼에 더 많았고 더 강했다. 또한 산케이는 일본 사람들이 보는 신문이고 조선일보는 한국인들이 보는 신문이다. 두 개의 글 중에 자웅을 겨룬다면 아마 표는 반반 정도로 갈라질 것이다.

이런 성격의 사안을 놓고 한국 검찰이, 아니 한국 청와대가 조선일보는 기소하지 않고 산케이만 기소한다는 것은 첫째 한일관계를 장기간 악화시키고, 둘째 국제적 비난을 자초하여 대한민국의 명예는 물론 대통령의 명예를 모두 실추시킬 것이다. 이 모든 가능성은 대한민국의 누구 때문도 아닌 박근혜 혼자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사고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청와대는 검찰에 기소중지를 명해야 할 것이다.
   
2014.9.16.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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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차 유엔총회, 심상치 않다

           제69차 유엔총회, 심상치 않다

이번 9월 16일부터 제69차 유엔총회가 열리는 모양이다. 이번 총회는 북한인권을 심판하는 국제 결전장이 될 것이다. 지난 3월 제네바에서 유엔인권결의안이 채택되었고, 이에는 1) 김정은 일당을 처벌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마련하고 2) 탈북자 강제송환을 금지하는 원칙을 마련하고 3) 북한인권 상황을 계속 감시할 사무기구의 상설화하자는 것이 들어 있다.  
북한인권 감시사무소는 한국에 설치하기로 결정된 바 있다. 이번에 열리는 유엔총회에서는 바로 북한인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북한을 제거해야 마땅한 나라 정도로 국제사회에 부각시킬 모양이다. 이번 유엔총회는 북한인권위원회(COI)가 벼르고 벼르던 결전장이었다.  
지난 3월 미국에서는 “김정은 파산법"이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봉쇄하여 김정은을 고사시키는 것을 목표로 시스템적으로 옥죄자는 것이다. 유엔의 북한인권의와 미국이 한 마음 되어 김정은의 목줄을 바짝 죄겠다는 것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193개국 대표들이 기조연설을 하고, 박근혜가 24일에 7번째로 15분에 걸쳐 기조연설을 하기로 되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일부 보도에 의하면 그 연설 내용이 평화통일 구상에 관한 것이라 한다. 아마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까 한다. 만일 이런 내용으로 연설을 한다면 박근혜는 김정은에 이어 제2의 문제아로 자리매김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2014.9.1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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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해 천연건강음료인 수액산업 육성키로


무공해 천연건강음료인 수액산업 육성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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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이용과 961-2324/5 


산림청에서는 최근 새로운 농산촌 소득원으로 각광받고 있는 고로쇠나무 
수액 등 각종 수액을 상품화하고 수액산업을 육성하여 단기 산림소득원으로 
개발키로 하였다 

o 산삼.녹용과 함께 신비의 "생명수"로 알려진 수액은 주로 자작나무.거제 
수나무.박달나무 등 자작나무류와 고로쇠나무.당단풍나무 등 단풍나무류 
에서 채취되는데 한국.중국 등에서 오래전부터 건강음료로 마셔 왔으며 
각종 당류.무기물 등 영양소가 다량 함유되어 있어 이뇨.혈당조절.피로 
회복 또는 위장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o 수액은 나무가 자신의 생장 및 외부로부터의 상처치유를 위하여 스스로 
만들어 내는 "생명수"라는 점에서 시중판매되고 있는 탄산수 및 생수와는 
크게 다르며 해마다 수액생산시기인 3-4월에는 고로쇠 집단생육지인 구례. 
광양 등지에 수액을 찾는 휴양인구가 줄을 잇고 있다 

o 일본의 경우에는 수액산업이 이미 일반화되어 있는데 180미리리터 1병에 
280엔에 시판되고 있으며 출고 즉시 품절될 정도로 탄산음료나 생수보다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산림청에서는 이러한 점에 착안, 고소득 건강 
식품으로서의 수액산업을 육성하기 위하여 수액음료를 대중화시키기로 
함으로써 본격적인 수액음료시대의 문을 열게 되었다 

o 이와 같은 고소득 건강음료인 수액이 지금까지 국내에서 상품화되지 못한 
이유는 종래의 수액채취방법이 원시적이어서 나무의 생장에 지장을 주어 
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나무줄기의 가슴높이 부위를 낫.톱 등으로 
V자형으로 절개한 다음 상처를 통하여 흘러나오는 수액을 빈병 등으로 수집 
하는 사구법이 사용되어 왔었다. 그러나 사구법은 수액채취시 이물질이 
포함되게 되어 위생상 정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고 채취부위가 부패하거나 
변색되므로 나무의 재질이 현저하게 저하되는 등의 문제가 제기되어 왔기 
때문에 산림경영 차원에서 수액채취는 문제가 있었다 

o 이에 따라 산림청에서는 나무의 생장에 지장을 주지 않고 수액을 효과적 
으로 대량 채취함으로써 산업화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인 천공법을 개발 
하여 보급하는 한편 앞으로의 수액채취시에는 의무적으로 천공법을 사용 
하게 할 계획이다 

o 이번에 새로 개발된 수액생산방법은 지상 30cm 부위의 나무줄기에 드릴로 
직경 1.2cm, 깊이 1.5cm 내외의 구멍을 뚫고 구멍에 고무.코르크마개. 
아크릴관을 부착시킨 호스를 설치한 후 호스와 채취통을 연결하여 수액을 
생산하는 방법으로서 이물질이 전혀 없고 매년 일정량의 수액생산이 가능 
하므로 위생상 깨끗하고 상업성이 있는 새로운 채취방법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천공법으로 채취된 수액은 즉시 마시면 더욱 좋으나 일반에 판매 
하기 위하여는 지름 0.2cm의 여과지에 수액을 통과시킨 후 섭씨 80도씨 
에서 저온살균하고 진공캔이나 병에 포장하면 1년 이상 저장할 수 있다 

o 수액은 가슴높이 지름 30cm의 나무에서 하루 2리터의 수액을 채취할 수 
있어 10일간 채취할 경우 나무 1본당 20리터의 채취가 가능하므로 연간 
3-4만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으며 전남 광양.구례군에서는 올해 3-4월에 
377호의 농가에서 297리터의 수액을 채취.판매하여 총 511백만원, 호당 
소득 1,355천원의 소득을 올린 바 있다 

o 이와 관련, 구례군에서는 매년 4월말 지리산 약수제를 거행하여 풍년 
농사와 군민의 건강을 기원하고 있는데, 올해에도 '92.4.20-4.22까지 
3일간 구례군 문화원 주관으로 지리산녀 선발.국악 경연대회.고로쇠수액 
시음회를 성황리에 개최하였으며 광양군에서도 약수회 주관으로 경칩에 
약수제를 군민 민속행사로 거행하고 있다 

o 산림청의 소득분석에 의하면 50년생 자작나무 임지 1ha에서 수액을 채취 
할 경우 연간 4,540천원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으며, 내부수익률(IRR)이 
23.8%에 달하는 고소득 분야로서 농산촌 소득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o 내년부터 생산될 것으로 예상되는 수액음료는 180미리리터 1병당 500원 
정도에 시판될 것으로 알려져 있어 비슷한 가격의 기존 탄산음료 및 생수 
음료와의 시장확보를 위한 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o 산림청에서는 이와 같은 수액산업의 육성계획에 따라 대상수종인 고로쇠 
나무, 당단풍나무 등 단풍나무류는 집단 천연림에서 수액을 채취토록 
하고 자작나무, 거제수나무, 박달나무 등 자작나무류는 활엽수 조림계획 
에 따라 수액수요량을 감안하여 점차 조림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o 이와같이 수액채취가 가능한 활엽수 조림은 지난 '70년대와 '80년대에는 
거의 인공조림을 실시하지 않았으나 최근들어 자연환경이 산업공해나 
병해충으로부터의 피해가 심각해짐에 따라 생태적으로 안정된 숲과 다양한 
목재수요에 대처하기 위하여 '88년도부터 시작한 산지자원화계획부터는 
연간 2,000ha-3,000ha(6,000천본-9,500천본) 수준으로 인공조림을 실시하고 
있으며, 특히 목재의 재질도 우량하고 조림성공률도 높으며 수액채취도 
가능한 자작나무류에 대해서는 인공조림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자작나무, 백화나무 그리고 봇나무

자작나무백화나무 그리고 봇나무

제가 주로 사용하는 이메일의 아이디는 beryoza입니다.
이 말은 러시아어로 자작나무를 발음할 때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당 뒷마당에는 열여섯 그루의 자작나무가 하늘 높이 뻗어있습니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면서 타기에 이름을 자작나무라고도 했답니다.
일본에서는 백화(白樺)나무라고 하는데나무의 줄기가 하얗기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습니다제 방에 있는 자작나무숲을 수로 놓은
북한에서 제작된 그림에는 <봇나무숲>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북한이나 연변에서는 봇나무라고 합니다.

하얀 줄기가 곧게 뻗어 자라는 자작나무는 북방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이기에
남방 지역에서 살다온 우리에게는 낯선 나무입니다.
그러나 그 나무로부터 채취된 당분인 자일리톨xylitol은 익숙할 것입니다.
자일리톨은 치아에 생성되는 충치의 활동을 억제하기에 껌에도 넣지만
치약에도 넣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자작나무 수액은 슈퍼마켓에 가면
쉽게 살 수 있지요나무에서 수액을 뽑아 마시는 것이 나무에게는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자작나무에 생기는 혹을 차가버섯이라고 하는데,
위장에 특별히 좋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차가버섯은 인간에게 준 자연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내용의 민요가
러시아 여러 지방에서 전해져 오기도 한답니다.

자작나무에 불을 붙이면 빨리 그리고 오래 타는 성질 때문에
옛날에는 결혼식 등의 잔치에서 불을 붙이는데 많이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작나무에 불을 붙인다는 의미로 자작나무 화()자를 사용하여
화촉(樺燭)을 밝힌다고 하였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변형되어 지금은 다른 화()자를 쓰고 있지만요.

자작나무는 시인들에게 시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안도현은 따뜻한 남쪽에서 제대로 사는 삶이란 뭐니 뭐니 해도
자작나무를 찾아가는 일이라고 하면서
자작나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프로스트는 힘들었던 순간마다 자작나무를 타고 놀던 어린 시절을 꿈꾸면서
생에 대한 용기를 내었노라는 시를 쓰기도 하였고요.
그런가 하면 ‘손님 돌아가는 길에 자작나무에 불을 붙여
길을 밝혔는데 그 향이 좋다’라는 중국의 시도 있습니다.

공원이나 숲에서 자작나무를 보게 되면
저는 종종 마음이 경건하게 여미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였을까요북방 원시 종교에는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자작나무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마도 활엽수가 많지 않은 북방에서는 길고 추운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면 싹을 피우고 잎을 내는 자작나무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모를 신비스러움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시편의 시인은 자연과 산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크게 깨닫기도 하였습니다(121:1-2).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세계가 다 아름답지만,
특히 자연을 통하여 주신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이 큰 것 같습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크게 느끼며,
아울러 러시아에서 사는 동안 자작나무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최영모 목사)

자작나무수액 한정판매합니다.

지리산(함양군 마천면)에 계시는 제 선배님께

해마다 자작나무수액을 주문해서 마시고 있습니다.

얼마전 고로쇠수액을 보내드렸던 그 분입니다.

채취과정은 나무옆에서 직접 채취해서 등에 지고 내려오는 방식입니다.

품질면에서 호스를 통해 편안하게 받는 수액과 비교가 됩니다.

자작나무 수액은 고로쇠수액보다 달지않고, 담백하고 깨끗한 맛이 납니다.

자작나무수액이 어떻게 좋은지는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세요.


상업적인 목적으로 하는 판매라기보다는,

같이 나눌수 있음에 더 큰 비중을 두고 판매하는 것이니

믿고 구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박스. 1.5리터 12병입니다. (20박스 한정)

가격은 6만원.

입금계좌 : 우리은행 1002133246593 예금주 이예지.

입금하신 후, 배송지 주소를 @dosanim 디엠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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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11/04/09 21:52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도사 2011/04/11 11:59    
      트위터에 가입되어있지 않으시면
      전화로 주문하시면 됩니다.
      010-36oo-7325 입니다.

자작나무의 함경도 이름 '보티'와 영어의 birch

 자작나무의 함경도 이름 '보티'와 영어의 birch  

단군신화도 사실은 '웅녀신화'라는 말이 더 근원적인 표현이다. 원시 모계사회에서는 남성은 가족의 일원보다는 일회적 또는 임의적 기간만이 가족이라는 것이 지금 남아 있는 중국의 모계사회를 유지하는 족속들의 풍습에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웅녀가 신단수에 기원했다는 것은 배필을 만나기 위하여서라기 보다 자식을 낳기 위한 어미의 기원으로 보아야 한다. 

birchrussia.jpg
*러시아의 자작나무 동네 풍경

자연 속의 동물적 차원이나 고대 원시인류의 '가족'의 의미는 모자 또는 모녀의 모계 계승 구조를 가졌다. 따라서 후대의 제도화된 종교적 영향이 없었던 오래된 토속 신화들의 구조는 모계 전통의 구조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그런 면이 단군신화의 웅녀 중심의 스토리 말고도 신라 시대의 풍류도와 그 사회 정치적 구조에 존재하고 있었다.  

같은 면에서 알영이 계룡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신화적 표현은 보다 원천적인 원시 모계사회의 여신 신화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나중에 '신라시조'로서 박혁거세가 더 강조된 것은 남성중심주의 시대의 영향이었다. 

<화랑세기>에서 보여주는대로 나중에 신라 왕계에서 여성적 계승이 약화되었을 때 남성중심의 의미를 강화했던 분위기에 이어지면서 그후 고려 중기의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에서 남성시조가 강조되었을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알영이 태어났던 계룡 그리고 그 입술이 새 부리를 하고 태어났을 정도로 어미 계룡에게서 계룡의 딸로 태어난 알영은 과연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익룡과 같은 모습의 괴수에게서 태어났을 것인가?

계룡을 요즈음의 무슨 SF(싸이파이) 영화 속의 익룡과 같은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신라 신화에 나오는 계룡은 식물신화 개념에 연결하여 해석되어야 한다. 고대 모계 신화들은 남성적인 동물신화보다 여성적 식물신화에 더 많이 더 오랜 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물신화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강조되었다면, 식물신화는 원시모계사회의 신화적 의식이며 여성중심의 기원문화에 연결된다. 따라서 신라 시조신화의 알영에 대한 계룡 신화는 단풍나무와 자작나무가 가졌던 봉황 또는 계룡 개념의 '여신적 신목'이 계룡 이미지에 연결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흔히 용봉사상에서 용은 남성적이고 봉은 여성적이라는 말은 그 표현 자체는 옳으나 봉황 신화가 훨씬 더 근원적이고 오래된 모계사회 중심의 원시형태의 신화적 잔재였다. 봉황은 날아다니는 새의 개념 이상 높은 산봉우리 및 그와 닮은 단풍나무와 높은 산에 자라는 자작나무 신목에 연결하여 읽어야 한다. 

그렇기에 용은 '앉는 자리'가 없지만, 봉황은 오동나무에 앉고 대나무 죽실을 먹는다는 식물신화와 함께 표현된다. 특히 단풍나무와 자작나무는 봉황신화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우리민족 역사 속에 식물신화의 깊은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필자는 단풍나무가 봉황에 연결된 신목이라는 것을 앞선 장에서 상세하게 밝혔다. 단풍나무와 자작나무는 계룡과 같은 의미일 것이고 특히 신라인들에게는 자작나무의 모양이 계룡의 의미와 연결된 신목으로 받아들여 그들의 초기 금관 형상에 적용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글에서 필자가 주장하려는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가 바로 신라 신화에서 말하는 계룡의 개념은 본래 신목(神木)에 연결된 신화적인 나무의 의미를 바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자작나무나 단풍나무가 계룡이나 봉황 이미지에 어떻게 표현되어 나타나고 있을까?

남성지배 시대에 와서 용 신화도 나무와 연결하여 강조되었다. 그래서 소나무가 '용트림 한다'고 하는 것에서도 계룡과 연결된 신목사상을 볼 수 있다. 계룡(鷄龍)의 '鷄' 즉 봉이 강조될 때 그 나무는 '봉트림'이 아닌 거대한 나무가 그 가지를 늘어트리는 모습은 '봉황의 홰치는 날개짓'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신라 시조신화를 언급할 때 알영을 단순히 박혁거세 '부인'으로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알영은 모계사회의 '여신' 개념에서 출발한 더욱 근원적인 원시형태의 신화적 개념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앞선 글에서 밝혔듯이 신라 금관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금관은 出자형보다 더 오래된 자작나무와 자작나무의 그 잎을 달고 있는 형태이다.(사진참조)


*가장 오래된 신라 금관 (경주 교동 폐고분 출토)
자작나무와 그 잎을 닮아 있다.

Betula papyrifera (Canoe Birch, Paper Birch)
*자작나무 잎

단군신화에서 신단수는 자식을 잇는 중요한 기원의 대상이다. 왕관의 의미는 왕위를 계승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왕조의 조상과 후손이 태어남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상징이다. 따라서 왕관에 신목을 상징화시키는 것은 그 기원적 의미에서 당연하고도 타당한 뜻을 가진다.

경주 교동 폐고분에서 출토되었던 위의 신라 금관은 자작나무 가지 모양을 상징하고 있으며 특히 그 잎은 자작나무 잎을 닮아 있다. 이에 대하여서는 앞선 글에서 논한 자작나무 형상의 신라 금관과 단풍나무 형상의 백제 금관에 관한 내용에서 다루었다.

<신라의 자작나무 금관과 백제의 단풍나무 금관 (3)>


바이칼호 주변에는 자작나무를 상징한다는 제사장의 유물이 지금도 나온다고 한다. 자작나무 금관은 분명 제정일치의 원시 국가의 아주 오래된 신화적 신목의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신단수(神檀樹)의 단(檀)은 박달나무 '단' 즉 자작나무이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대로 신라의 가장 오래된 금관의 모양이 '자작나무 금관'이란데서 필자는 이것을 단순히 금관이라고 하지 않고 '단관(檀冠)'이라 칭해둔다. 자작나무의 껍질은 마치 갑옷을 입은 모양과 유사하고 단풍이 든 그 잎 모양은 금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자작나무와 그 잎 모양
(위의 신라 금관 이미지에 클로즈업된다)

단관은 그 모양에서나 의미에서 여성 지배자가 쓰기에 알맞은 이미지를 하고 있다. '숲의 여신'으로 받아들였던 자작나무 자체가 여신의 신목인만큼 '신들린 나무' 그 자체이기 때문에 북미인디안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여신이 거하는 자작나무 자체로 받아들였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박달나무 신단수에 관한 단군신화를 고려시대 불교문화의 시각으로 재기록하지 않은 원판의 신단수 신화는 적어도 웅녀가 신단수 여신이을 수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올림푸스 신의 화신이 올림픽 금메달을 딴 사람의 월계관이다. 금메달은 월계관의 금관 의미라 할 수 있다. 월계수 가지를 머리에 쓰는 것은 신라 식물왕관의 계보에 그대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이스의 월계관은 신라 여성 지배자들 자작나무 관을 씀으로써 자작나무(박달나무) 신으로 화한다는 의미에 연계된다. 그런 의미가 자작나무 금관 즉 단관을 쓰는 여왕의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웅녀 = 신단수(박달나무)

                              신라여왕 = 자작나무(박달나무)


'朴'자가 자작나무 껍질 일어난 모습이며, 껍질을 벗기고 또 수액이 나오는 자작나무를 '박달나무'라고 표현한 것은 앞선 글에서 논했다. 박혁거세의 단목(檀木)의 의미로 '박단나무 - 박달나무'로 표현했을 것이라는 것은 특정 인물인 박혁거세 이상 식물신화에 연결되어 있는 '朴'자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 신라의 왕위 계승은 모계 계승으로 이어져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신라의 왕계 계승은 남성인 부계 계보 여성인 모계 계보인 진골정통과 대원신통의 두 계툥이 지그재그 순으로 이어졌다. 그것은 원시 모계신화 계승의 전통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 군사적 지배의 남성적인 힘 이상 종교적인 여신적 신국(神國)사상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나라가 신라였기 때문이다.

신라시대에 여왕이 세 명이나 나온 것도 이러한 배경이다. 그런 면에서 신라인들에게 식물신화 즉 신목에 대한 신화적 의식은 특히 강조되었을 수 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무속의 굿에서 대나무나 소나무가 대잡이와 함께 흔들리는 것은 나무에 신이 내린다는 것을 전통 풍습으로 믿어 왔기 때문이다.

<화랑세기>에서 '신라에는 신국(神國)의 도(道)가 있다'고 기록한 그 신국은 바로 여신에 대한 풍류도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화랑이 본래는 여성이었다는 것은 이것을 뒷받침한다.

박혁거세 어머니를 의미하는 선도성모가 경주의 선도산과 지리산 노고단에 제단으로 조선시대까지 모셔졌다는 것은 여신이 단순한 인간숭배의 차원이 아닌 산신 신앙과 연결되어 있었으며 특히 높은 고산 상봉우리를 선호한 것은 자작나무 신목에 대한 계룡(鳳) 숭배가 그 속에 숨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려 조선의 불교와 유교의 국가적 영향으로 천년 신라문화의 잔재는 많이 사라졌을 지라도 고로쇠 단풍나무와 거제수 자작나무의 수액을 먹으러 순례를 떠나는 곡우물 제전과 전통 느티나무에 대한 조상들의 숭배의식은 지금 까지도 남아 있는 풍습이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전통 고분들의 모양이 봉분(conical mound)으로 된 배경은 자작나무 잎의 모양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신라 금관에서 보이는 자작나무 이파리들은 계룡 즉 봉황의 깃털(공작 깃털을 보라)을 상형화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분(封墳)이라고 할 때 '봉'이란 자작나무 잎인 봉황의 '鳳墳' 의미도 그 음운 속에 숨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신화적 의식으로 보면 죽어 신선이 된다는 것은 산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자작나무와 같은 여신 앞으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했을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로 집(티피)을 짓고 죽어서는 시신의 뼈를 자작나무 껍질로 싸서 봉분을 했다는 것은 다시 자작나무 여신 앞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에 천마도가 그려진 것에는 천마를 자작나무에 싸서 보내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천마도의 천마는 천마총의 주인공이 타던 말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박혁거세 신화에서 등장하는 천마에 대한 숭배적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진 것은 박혁거세 어머니 선도성모 또는 알영부인의 신화적 배경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졌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고대 우리 민족은 자작나무 껍질로 집을 짓고 자작나무 껍질에 싸여 시신이 장례되었던 전통은 함경도 지방의 전통 풍습에 남아 있다 그 지역의 풍습에는 사람이 죽으면 장사 지낸지 3년 후에 다시 개묘하여 백골이 된 시신을 자작나무 껍질로 싸서 다시 묻는 '개천'이라는 풍습이 있었다.

자작나무 껍질은 사람의 피부와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자작나무 안쪽의 붉은 살은 사람의 살로 보았을 것이고 그 안쪽의 나무 중심은 뼈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작나무가 상징하는 것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물 즉 그 수액이다. 앞선 장에서 다루었듯이 지금도 곡우물 축제에 남아 있는 자작나무과인 거제수나무의 수액을 채취하는 것은 바로 그 수액이 물을 대신했기 때문이다. 북미 인디안들이나 아이누족들도 산속에서 물이 없을 때는 자작나무 밑에서 불을 피우고 그 자작나무 껍질에 상처를 내어 수액을 받아 취사에 썼다는 것은 자작나무의 의미가 생명수나 같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

바이블의 생명나무라는 것의 의미는 수렵시대에 산 속에서 때로 구하기 힘든 수분을 채워주는 자작나무의 수액에 대한 의미로 그렇게 '생명나무'로 표현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창세기에 나오는 생명나무는 자작나무였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전통 지붕집 가운데 너와 지붕은 나무껍질로 지붕을 만든 나무껍질 기와집을 말한다. 요즈음 많이 보이는 나무껍질이 아닌 나무 널판으로 된 '너와'라는 것들은 도끼문화의 발달을 말하기 전에 톱으로 끊은 자국들이 나란히 있는 것들이라 아주 옛날 너와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톱이 개발되기 이전의 사람들에게 너와는 분명 나무껍질로만 만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나무껍질이 가장 선호되었을까? 박달나무, 사스레나무, 거제수 나무 등의 자작나무과의 나무껍질들이다.

그런 나무껍질로 만든 지붕은 분명 요즈음 너와처럼 동강동강 난 것이 아닌 다른 형태의 나무껍질일 수 밖에 없다. 그 가장 좋은 유물이 북미 인디안들의 원뿔형 티피(tipi, tippee) 또는 돔형태의 위그웸(wigwam)이다. 전통적으로 인디안들은 자작나무 껍질로 두른 이동식 티피를 만들었다. 그렇게 보면 코리안들의 고대 '너와집'은 바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티피형태이었을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요즈음 신석기 - 구석기 시대 움집 유적을 재현한다면서 지푸라기 또는 그와 유사한 띠집으로 만드는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아무래도 농경시대 움집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수렵시대 사람들에게는 가을철이 아니면 제대로 자란 것을 획득할 수도 없는 띠풀이다. 수렵은 이동생활이기 때문에 띠집은 뜯어 옮기기에도 무겁고 부피가 크다.

그런 반면에 자작나무 껍질은 아무 때나 만들 수도 있는 재료이고 한결 가벼운 껍질 재료이다. 분명 농경시대 이전의 움집은 인디안들의 티피처럼 나무껍질로 만든 것이어야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 나무껍질은 기능성 이상 신화적으로 '숲의 여신' 자작나무의 가호를 받는다는 의미에서 자작나무 껍질로 티피를 둘렀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옛 건축 풍습 가운데는 귀신을 쫓기 위하여 집의 기둥 하나는 자작나무로 만들었던 전통이 있었다는 것은 수렵시대의 자작나무 티피 전통이 남아 있는 잔흔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너와지붕 또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었던 티피 지붕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너와 지붕용의 나무껍질이라고 하면 흔히 소나무 껍질을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 모양새가 지붕을 만들기에는 적격이 아니며 특히 소나무 껍질은 수분 흡수가 잘 되어 금방 썩을 수 있다. 그런 반면에 자작나무는 그 통나무 전체의 껍질을 벗길 수도 있어 요즈음의 합판과 같은 큰 두루마리 형태의 껍질을 지붕으로 두를 수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자작나무라고 하면 흔히 북쪽지방에만 있는 것으로 알지만, 남쪽 지방에서 많이 서식하는 자작나무과의 박달나무, 사스레나무, 거제수나무 등에서도 껍질을 벗길 수가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고대 수렵시대의 지붕은 자작나무류의 껍질로 티피 형태의 움집을 지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할 것이다. 

신라고분 가운데 김영총과 양산 부부총에서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모자가 나온 적이 있다. 1977년도에 신라 고분에서 글씨가 씌어진 자작나무 껍질이 발굴되었다든지 신라시대 석탑 안에서 자작나무 껍질에 그림이나 불경이 씌어진 것이 발견된 것은 불교시대 이전의 자작나무 신목의 신화적 전통과 그 기능성이 함께 남아 있는 형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작나무 신목이 계룡(鳳)에 연결되는 것은 그 불에 연결된 의미에서 더욱 그 연계성이 강화된다. 북미의 오지브웨(Ojibwe) 인디안들이 그들의 자작나무 신화에서 자작나무가 '불에 탄 흰 색'으로 보는 것처럼 자작나무가 불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불의 새인 봉황에 연결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을 한 겹 벗기면 그 안쪽은 불이 타는듯한 붉은 빛이다. 

본래 '횃불'이라는 말은 계룡 즉 '봉황의 불'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이미 앞선장에서 논했지만, 風자는 鳳의 옛글자이기도 했다. 그 風 안에 들어가 있는 虫은 '충'이라고 읽으면 벌레이지만, 큰 동물을 칭할 때의 뜻으로 '훼'라고도 읽는다. 대훼(大虫)는 늙은 호랑이(老虎)를 의미하며 장훼(長虫)란 큰 뱀을 의미한다.

이러한 '훼'의 뜻을 보면 風은 봉황의 날개 아래 한 마리의 큰 뱀이나 짐승을 잡아서 날으는 모양처럼 보이는 글자가 된다. 또는 큰 뱀이 날개를 단 모습 즉 계룡 자체를 의미하게 된다.

닭이 '홰를 친다'고 할 때 그 '홰'는 '훼'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 횃대를 잡는 것은 큰 뱀을 잡고 있는 봉황(계룡, 금시조 등)의 모습에서 유래하여 뱀 대신에 막대기가 '횃대'가 되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와 함께 '훼'는 홰치는 커다란 날개 자체를 의미하는 뜻이기도 했을 것이다. 호롱불에서 그을음인 '홰'가 올라온다는 것에서 불과 관련되는 불새인 봉황의 날개의 모습이 '홰'에 숨어 있다.  그래서 횃불이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불의 새인 봉황의 불 즉 '훼(虫)'를 든다는 의미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자작나무가 불의 새 봉황(계룡)의 신목이라면 횃불은 특히 자작나무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자작나무를 한자로 자작나무를 화(樺 자작나무 화)라고 하는 데서 그 배경이 남아 있다.

 * 자작나무 본재 


화(樺)란 나무가 불을 붙인듯 화려한 빛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화촉(華燭)을 밝힌다는 의미는 본래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횃불인 '樺의 불' 즉 횃불을 밝힌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자작나무 껍질을 불에 붙여 들고 기다리는 것은 북유럽에서 옛날 귀한 손님을 기다릴 때의 풍습이었다. 경기도 고양군의 전설로 남아진 백제 처녀 '한주(漢珠) 이야기'에서 고구려 왕자를 기다릴 때 횃불을 들고 기다렸다고 했던 것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횃불이었지 않았을까. 북미 인디안들의 자작나무 껍질 횃불 만드는 방법은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북미인디안들의 자작나무 횃불(樺불) 만들기(아래 사이트 참조)


양초가 흔한 시대에 들어와서는 횃불 대신에 촛불이 많아져 자작나무 화(樺)에서 나무는 없어지고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한 것이다. 원시형태의 화촉을 밝힌다는 것은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횃불을 키고 신랑 신부가 각각 혼인 식장으로 걸어 나오도록 기다리는 의식이 혼인의 옛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날 서양인들이 자작나무 껍질 안에 촛물을 넣어 양초 장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자작나무 횃불의 전통과 양초문화를 접목한 '화촉(樺燭)'이라 할 수 있다.


*자작나무 껍질로 두른 촛불인 '화촉(樺燭)'


자작나무를 켈틱족들은 birch라고 불렀으며 오늘날 자작나무의 영어 birch가 되었다. 앞장에서 밝힌대로 서양에서는 영어의 '버치(birch)의 어원이 동양의 산스크리트어의 "껍질에 글을 쓰는 나무"라는 뜻에서 온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런데 '버치'라는 말은 놀랍게도 우리말의 토속어에서 볼 수 있다.

함경도 지방에서는 자작나무를 '보티나무'라고 한다. '보티'와 '버치(birch)'는 음운상에 연결된 말이다. 특히 함경도 풍습에서 자작나무 즉 보티나무는 죽어 그 뼈를 싸서 장례를 치렀던 만큼 대단히 의미있었던 나무였다. 함경도의 '보티'가 켈틱족의 '버치'에 언어 역사적 연계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산스크리트 언어 문명은 동과 서로 서로 연결된 흔적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Photo: William Moore peeling white birch bark from a felled tree, to be used for baskets, 1958
*William Moore peeling white birch bark from a felled tree, to be used for baskets.

산스크리트 문명은 동과 서로 연결되었다고 할 때 서양학자들이 birch에 대한 어원을 많이 알려진 산스크리트 문화에만 적용하고 고대 동아시아의 강력한 수렵민족이었던 고조선 고구려인들의 문화에서 그 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함경도 지방에 남아 있는 자작나무의 뜻인 '보티'가 유럽을 거쳐 켈틱족 문화에서 'birch'로 이어졌을 개연성은 충분한 것이다.

특히 그 수액 채취의 풍습에서도 유사하며, 단군신화의 신단수가 '보티'이며 앞선 글에서 밝힌대로 켈틱족의 옴 문자의 첫 글자또 자작나무라는 것을 그것을 잘 뒷받침해주고 있다. 자작나무 껍질은 그 무엇보다도 생활 속의 티피, 카누, 바구니, 손나팔까지 다양한 도구를 만드는 기본 재료였다.  

*북미의 알곤퀸(Algonquin) 인디안들의 자작나무 티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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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칸신주 waswagoning 인디안 민속촉의 자작나무 껍질 위그웸 (2007년 필자촬영)

*자작나무 카누

*븍미 인디안들의 자작나무 껍질 그릇들





이처럼 수렵시대에는 '나무 껍질' 문화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동물의 껍질과 나무의 껍질은 모든 생활 용구를 사용하는 중요한 재료들이었다. '각을 뜬다'고 할 때는 동물이나 나무 등의 껍질을 벗긴다는 의미이다. 그 '각(殼)이 농경시대에 곡(穀)으로 바뀐 내용에 대해서는 앞선 글에서 논했다. 

여기에서 필자의 이미지 상상 대입을 좀더 강화해 보겠다. 

껍질이 한자로 각(殼)으로 표현되기 이전의 우리 말에서 자작나무를 뜻하는 '보티'가 어쩌면 '껍질'을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보티'는 한자로 표현하면 '朴帶'라 할 수 있다. '티'는 '띠'와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생각컨대 12지신상의 동물 '띠'들은 본래는 나무들로 된 12신목 '띠'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앞선 글 켈틱족의 '옴 신목들'에서 다루었다.

12지신의 '띠' 문화는 '허리띠' '머리띠' 등의 몸에 두르는 띠에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런 띠는 수렵시대에 호랑이 가죽 띠를 포함하는 동물 가죽들을 두르는 위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원시형태의 모계 시대의 경우 식물의 껍질 '띠'가 그 기원이었을 것으로 본다.

* 북미 인디안들의 자작나무 껍질로 땋은 반지
Three strand braided birch bark inset on a birch wood ring. 


여기에서 함경도 사람들의 '보티'가 영어의 'birch'(버치)와 연관하여 그에 파생되는 언어들을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거나 가죽옷을 만드는 사람 또는 그 일을 '갖바치'라고 한다. '갖'은 '가죽'의 준말이다. 여기에서 '바치'는 그 자체가 자작나무 또는 그 껍질을 의미하는 '보티 - 바치'에서 '갖바치'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 박달나무, 거제수나무 등 자작나무과의 껍질들은 고대 수렵시대에서 마치 살가죽을 덮고 있는 가죽처럼 보였을 것이다.
'갖바치'의 '바치'는 '버치'(함경도의 '보티')에서 유래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갖바치'는 '짐승 가죽'과 '자작나무 가죽(껍질)'의 두 다른 껍질의 합치된 말로 볼 수 있다. '갖바치'가 짐승 가죽을 벗기는 백정과 관련된 하층계급을 다루는 말이었기 때문에 천한 사람을 뜻하는 의미로 '바치'가 나중에 '동냥바치' 등에서도 쓰였다. 그러나 본래 '바치'는 '보티' 즉 자작나무 껍질 또는 그 일을 다루는 사람의 의미로 쓰였을 수도 있다고 본다.

가죽을 다루는 이름에서 '갖바치'로서 가죽의 의미인 접두어 '갖'이 들어간 것을 볼 때 '바치'가 보다 오래된 말로 보인다.

본래는 '바치'가 '보티'로서 자작나무를 의미했었지만, 자작나무 껍질로 워낙 많은 생활용구(티피, 모자, 카누 등등)를 만들었기 때문에 '바치'는 자작나무 껍질을 의미하는 말이 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가죽을 다루는 사람에게 '갖바치'로 사용되었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음운상에서 한 걸음 더 멀리 나가 보겠다. 우리말 '바지'는 윗도리와는 달리 나무를 닮은 두 다리의 '껍질'을 두르는 의복을 의미한다. 의복에서 의(衣)는 그 글자 모양새에서 상의를 말하고 복(服)은 月부에서 그 모양이 다리와 관련한 하의의 모양에 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나무 가지를 닮은 아랫도리를 음운상으로 '복'으로 표현한 것은 '보티'나 '朴(박)'과도 무관할 수 없게 보인다.

'보티 - 바치'는 '바지'에 연결된 배경이 있을 수 있다. 옛날 옛적 수렵시대 때는 의복이 없이 분명 자작나무 껍질 '바치'를 잘 다듬어 서양의 카우보이들의 허벅지나 무릅대처럼 대고 다녔을 것이다. 그것이 '바치' 즉 '바지'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자작나무 '버치'(birch)는 함경도의 '보티'에 연유했을 수도 있다.
'바지'의 어원은 보티겁질로 만든 바지 부품에서 유래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자작나무 껍질 '바치'로 나중에는 '가죽 바치' 즉 '갖바치'로 그 다음에는 천으로 된 아랫도리 옷을 그냥 '바지'로 불렀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버치' 즉 자작나무 가지 사이에서 '수액'이 나온다는 것을 '바지' 가랑이 사이에서 '물'이 나온다고 하면 너무 지나치게 멀리 나가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더 멀리 나가보면, 여성의 생식기를 의미하는 말의 어원과 여신의 신목으로 받들어 신라의 금관의 장식이 된 자작나무 즉 '보티'는 신화적인 같은 뿌리의 음운이었을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영어에서도 'birch'(버치) 음운과 유사한 '버진(virgin)'이 가지는 그 성모의 의미와 성적 의미가 서로 음운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다.

자작나무의 옛 표현이었을 '보티'는 단군신화에서 뿐 아니라 신라의 여성 왕계 계승에서 자작나무 금관으로까지 남아 있는 것이며,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순례의 길을 떠나게 하는 곡우물 축제는 신라시대의 신화적 배경의 남은 풍습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12/09/08 오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