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나무, 백화나무 그리고 봇나무
제가 주로 사용하는 이메일의 아이디는 beryoza입니다.
이 말은 러시아어로 자작나무를 발음할 때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당 뒷마당에는 열여섯 그루의 자작나무가 하늘 높이 뻗어있습니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면서 타기에 이름을 자작나무라고도 했답니다.
일본에서는 백화(白樺)나무라고 하는데, 나무의 줄기가 하얗기에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제 방에 있는 자작나무숲을 수로 놓은
북한에서 제작된 그림에는 <봇나무숲>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북한이나 연변에서는 봇나무라고 합니다.
하얀 줄기가 곧게 뻗어 자라는 자작나무는 북방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이기에
남방 지역에서 살다온 우리에게는 낯선 나무입니다.
그러나 그 나무로부터 채취된 당분인 자일리톨xylitol은 익숙할 것입니다.
자일리톨은 치아에 생성되는 충치의 활동을 억제하기에 껌에도 넣지만
치약에도 넣어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자작나무 수액은 슈퍼마켓에 가면
쉽게 살 수 있지요. 나무에서 수액을 뽑아 마시는 것이 나무에게는
좀 미안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자작나무에 생기는 혹을 차가버섯이라고 하는데,
위장에 특별히 좋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차가버섯은 인간에게 준 자연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내용의 민요가
러시아 여러 지방에서 전해져 오기도 한답니다.
자작나무에 불을 붙이면 빨리 그리고 오래 타는 성질 때문에
옛날에는 결혼식 등의 잔치에서 불을 붙이는데 많이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작나무에 불을 붙인다는 의미로 자작나무 화(樺)자를 사용하여
화촉(樺燭)을 밝힌다고 하였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변형되어 지금은 다른 화(華)자를 쓰고 있지만요.
자작나무는 시인들에게 시의 소재가 되기도 합니다.
안도현은 따뜻한 남쪽에서 제대로 사는 삶이란 뭐니 뭐니 해도
자작나무를 찾아가는 일이라고 하면서
자작나무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프로스트는 힘들었던 순간마다 자작나무를 타고 놀던 어린 시절을 꿈꾸면서
생에 대한 용기를 내었노라는 시를 쓰기도 하였고요.
그런가 하면 ‘손님 돌아가는 길에 자작나무에 불을 붙여
길을 밝혔는데 그 향이 좋다’라는 중국의 시도 있습니다.
공원이나 숲에서 자작나무를 보게 되면
저는 종종 마음이 경건하게 여미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북방 원시 종교에는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자작나무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마도 활엽수가 많지 않은 북방에서는 길고 추운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면 싹을 피우고 잎을 내는 자작나무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모를 신비스러움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시편의 시인은 자연과 산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크게 깨닫기도 하였습니다(시121:1-2).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세계가 다 아름답지만,
특히 자연을 통하여 주신 아름다움은 비할 데 없이 큰 것 같습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크게 느끼며,
아울러 러시아에서 사는 동안 자작나무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최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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