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6일 화요일

패권전환의 기점, 911사건을 다시 생각한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에서 하이재킹된 여객기가, 뉴욕의 세계 무역센터빌딩(WTC)과 워싱턴 DC의 국방성(펜타곤)으로 돌진했던 911 사건이 일어난지 13년이 지났다. 그 사건은, 불가해한 수수께끼가 얼마든지 있다. 대부분은, 지금도 수수께끼인 채로다. 빌딩에 돌진한 물체가 하이재킹된 여객기였는지 어떤지 조차 불확정이다.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사례를 든다. 보통은 일어나기 힘든 미국의 방공 경계 태세가 그날 만 없었다는 사실. 항공기가 돌진해도 WTC 빌딩의 철골은 무너지지 않을 것인데 통째로 붕괴해 버린 사실. WTC의 붕괴 방법이 폭탄에 의한「제어 해체」와 거의 똑같은데 미 당국은 이 폭파설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는 사실. WTC 붕괴뒤 수시간 후, 근처의  WTC 7 빌딩이 돌연 완전 붕괴한 사실. 국방성에 뚫린 구멍이 항공기보다 훨씬 작았던 사실(여객기가 아니라 설치형 폭탄일 가능성). 두대의 비행기의 블랙 박스가 발견되지 않은 사실. 범인의 전모가 불투명한 사실(실행범이 여러 명이라는 것은「착각」). 알카이다에게는 실행범 조직으로서의 실태가 없다는 사실 등, 조금 생각한 것만으로도 끝이 없을 지경이다. (9.11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 9개의 수수께끼)

911 사건 후, 무수한 미스테리가 인터넷 상에서 영문으로 지적되었다. 나는, 이러한 정보를 가능한대로 모아 읽고, 사건의 미스테리한 전모를 몇 회인가의 기사로 나누고 쓰고, 인터넷으로 전파했다. 그것을 책으로 정리해 02년 4월에 PHP 연구소로부터「조작된 9・11」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했다. 그 후, 911의 수수께끼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음모론」이라고 여겨져「좋지 않는 것」「잘못된 행위」라고 보는 경향이 일・미 등의 언론계에서 강해졌다. 보수적인 출판사인 PHP의 운영부는, 출판한 후에야  불량한(?)서적을 출판했다는 것을 느꼈는 지, 본서는 서서히 절판되었다(팔리지 않았으니까 절판이 되었다는 반론이 있겠지만).
절판이 되고 10년 정도가 지나, 본서는 더 이상 거의 구입할 수 없게 되었지만, 거기에 쓴 의문점의 대부분은 지금도 해명되어 있지 않다.

911은 역사의 전환점으로서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본서의 내용을 공개해 두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이므로, 내가 쓴 초고를 인터넷에 공개하기로 했다. (짜진 9・11)

이 공개는, 몇년 전부터 하려고 생각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하지 않았었다. 「13주년」을 노려서 공개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공개는 했지만, 참고 문헌의 URL이 기능하지 않게 되는 등,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HTML 태그를 최저한으로 만 달았다. 처음 단락도, 완성된 서적의 것과는 일부 차이가 난다.

미국에서는 매년 9월 11일이 가까워지면, 911 사건의 미스테리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금년은 론・폴 전 하원의원이, 부시 정권은 사전에 테러 사건의 발생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막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발언하고 있다. 이 건은, 사건으로부터 2개월 후에 이미 미국에서 지적되었었고, 나도 당시에「테러를 일부러 막지 않은 대통령」이라는 기사를 썼을 정도로, 매우 기본적인 미스테리 중의 하나다. 이렇게 911은, 기본적인 수수께끼조차 풀리지 않았다. (테러를 일부러 막지 않았던 대통령)(테러의 진행을 막지 않았던 미군)
03년의 이라크 침공을 둘러싸고, 침공의 명분이 된「이라크의 대량 파괴 무기 보유」가 미 정부에 의한 거짓말이라는 것이 사전에 지적되어, 이라크 침공 후, 미 정부도 거짓말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이란이 핵병기 개발하고 있다는 비난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만든 누명이라는 것이 관계자 사이에서 상식이 되고 있다. 작년 여름, 시리아에서 화학 병기에 의한 시민 살상을 한 것이 정부군이 아니라는 것도,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말레이지아 기를 격추한 것도 우크라이나 군이라는 것도 폭로될 것 같다.

예를 든, 비교적 약한 이러한 선전에 의한 사실 왜곡과는 달리, 911의 수수께끼 만은, 몇 년이 경과해도 드러나야 할 진실이 좀체로 나타나지 않는다. 미국의 핵심부는, 911사태의 진상이 밝혀지는 것을 전력으로 차단하고 있다. 공식적인 이야기(사실)가 되지 않고 「음모론」에 머무르는 한, 진상은 확정할 수 없다.

이라크나 시리아나 우크라이나의 사건은, 많은 미국민으로부터 인연이 먼 외국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911은 미국 내에서 일어나, 당시의 모든 미국민에게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므로 미국의 핵심부는, 진상의 폭로를 전력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향후 만약 911의 진상이 폭로되면, 정부에 대한 미국민의 신뢰가 격렬하게 저하해, 정치적인 지각변동을 일으킬 수 있다. 911 이래, 테러 대책 등을 구실로 한 억압이나, 빈부 격차 증대의 방치, 위법 이민의 말도 않되는 용인 등, 미국을 정치적, 사회적으로 불안정하게 하는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 이 흐름이 의도된 배후의 전략이라면, 911를 둘러싼 진상의 폭로도, 미국이 더 혼란에 빠져「그것이 미국의 몰락을 결정적으로 부추키는 방아쇠」가 될지도 모른다. (이민 위기를 부추기는 미국 정부)

911은 수수께끼 투성이지만, 911이 가지는 역사적인 중요성은 수수께끼가 많다는 것에 있지 않다. 911의 중요성은, 그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패권 전략이「국제 협조 주의」로부터 「단독 패권 주의」로 크게 전환한 것이다.

국제 협조 주의란, 패권국인 미국이, 유럽이나 호주 캐나다(영국계 제국) 등 동맹 제국(선진 제국)의 의견을 들으면서, 국제적으로 협조해 세계를 관리(운영, 지배, 패권 행사)하는 방식이다. 유럽이나 호주 캐나다는, 세계 운영 시에 가능한 한 무력행사를 하지 않고, 외교나 경제 제재로 운영해 나가려는(그 쪽이 효율적이라고 여김) 것으로, 국제 협조주의는 외교를 중시하는 것이다.

동맹 제국 중에서 영향력이 강한 것은, 제2차 대전까지의 패권국으로, 패권을 미국에게 양도한 영국이다. 국제 협조주의는, 영국이 동맹 제국의 이름을 빌려 미국의 패권 전략을 좌지우지하는「미국과 영국 중심 주의」이다. NATO나 G7 등, 미국과 영국+ 불 독 일본과 이태리+ 캐나다라는 구조가 되어 있는 조직이 바로 그것을 중시하는 국제 협조적 조직체다. 이러한 영국의 세계 전략은, 미국, 유럽, 호주 일본 등 유라시아 주변부의 해양 제국이, 러시아나 중국 등 유라시아 중심부의 대륙 제국을 포위하는「지정학」적 공격이며, 그 구도를 통해 냉전이 40년 이상 계속되었던 것이다.

(국제 협조주의는 외교 중시지만, 미 정계에서 영향력이 강한 군산 복합체의 이익을 위해, 영국은 전후, 미소가 장기적으로 군사 대립하는 냉전 구조를 만들어 주었다. 따라서 냉전 종결까지, 영국과 군산 복합체는 동료였던 셈이다)
대조적으로 단독 패권주의는, 동맹국의 의견 등을 듣지 않고, 미국이 독단으로 세계 운영을 해 나가는 방식이다. 미국의 상층부(정계)에서는, 군산 복합체(국방성과 군수산업)와 이스라엘(AIPAC 등 우파 로비)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에, 단독 패권주의는「전쟁」과「중동」이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군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에「뭐든지 전쟁으로 해결해야 한다」가 되고, 이스라엘 세도 강하기 때문에「(이스라엘에게  위협인) 중동의 독재 정권을 차례로 전쟁으로 전복해 민주화 하자」라는 모양새의 전략이 추진된다. 따라서, 국제 협조주의였던 911 이전의 클린턴 정권은, 영국과 사이가 좋았지만, 911 후에 단독 패권주의를 채택한 부시 정권은, 완전히 변해 영국에게 냉담해졌다.

911 사건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관련 보도를 그대로 믿고「알카이다가 미국을 적대시해 일으킨 테러 사건이며, 미 당국은 무능해서 막을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고 해도, 미국이 단독 패권주의로 전환한 것은 불가해하다.

그러한 전략의 전환이 테러 대책에 대한 효율성이 높아졌다면 합리성이 있겠지만, 이 건은 그렇지도 않다. 911 후,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스페인, 인도 등, 미국의 동맹 제국에서도 이슬람교도에 의한 테러가 일어났으므로, 오히려 국제 협조주의였던 편이 더 효율적으로 테러 대책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911 후의 테러 대책이 형편상 좋았기 때문에 단독 패권주의로 변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 전략을 단독 패권주의로 전환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미국의 핵심부에서 먼저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911이 일어나(유발되어) 그 충격을 이용해, 단독 패권전략으로의 극적인 전환이 발생되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미국이 단독 패권주의로 전환한 후에 수행한 최대의 움직임은 03년의 이라크 침공인데, 911과 이라크 침공은 본질적으로 관계가 없다. 미국이 911의「범인」이라고 지목한 알카이다는 이슬람주의를 신봉하지만, 이라크 침공으로 무너진 후세인 정권은, 이슬람주의를 싫어하는 세속주의 정권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주장했던 대 테러 전쟁이라는 관점에서라면, 미국은 후세인 정권의 이라크를 무너뜨릴 것이 아니라, 반대로, 화해해 미국의 테러 대책에 협력을 받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911의 발생으로부터 3일 후에는, 부시 정권 내에서 이라크를 침공하기로 내정되어 있었다. 이것은, 후세인 정권을 무력으로 무너뜨리려는 이라크 침공 구상이 먼저 있었다는 것이고, 911은 그것을 실행할 계기로서 사용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국제 협조주의(외교 우선, 영국이 배후)와 단독 패권주의(군사 우선, 이스라엘이 배후)와의 상극은 911보다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냉전 구조가 국제 협조주의의 산물이라는 것은 이미 말했는데, 냉전 구조는 사실상, 1985년의 미국과 영국이 동시에 행한 금융 자유화와 프라자 합의(관리 시세제의 확립)로 끝났다.


미국과 영국 주도의 동맹 제국이 소련을 적으로 삼고, 국제적으로 협조하는 지금까지의 전략이 조용하게 방폐되고 그 대신, 미국과 영국이 국제 금융 자유화(채권금융 시스템의 확대)에 의해 번영하는 경제 패권의 시대가 왔던 것이다. 그리고 5년 후, 미국이 소련과 화해해, 냉전이 끝났고, 90년 대의 클린턴 정권은 경제를 앞세워, 군수산업은 합리화를 피할 수 없게(냉전의 종료로 전쟁특수가 사라졌으므로) 되었다.

따라서, 영국에 의해 버려진 군산복합체는, 미 정계 내의 이스라엘계 세력과 결속해, 재기를 노렸다. 클린턴 정권은, 93년의「오슬로 합의」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해 이스라엘에게 경제발전이라는 혜택을 주어 수중에 넣으려고 했지만, 이 정책에 찬성해 그것을 추진하던 이스라엘의 라빈 수상이 95년에 암살되면서 도중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어서, 군산 복합체는 클린턴 정권을 움직여, 소말리아나 수단, 아프가니스탄 등, 중동 인근에 위치해 있고 내전상황에 빠져있는 국가로 미군을 지상군으로 투입시켜, 점령의 수렁을 유발해 과거의 돈벌이를 부활하려고 했지만, 클린턴은 소극적이었다. 그러자, 군산 복합체와 이스라엘 우파는, 클린턴과 백악관 인턴인 모니카・르인스키(유태계)와의 성적 스캔들을 98년에 폭로시켜, 클린턴을 궁지에 몰아넣고 중동 지역에서의 전쟁을 승낙시키려고 했지만, 이 역시 제대로 되지 않았다.
군산 이스라엘 복합체로부터의 압력을 받은, 클린턴은 93년에 강경파인 마데레인・올브라이트(유태계)를 국무장관으로 앉혔다. 그녀는 911 후에「악의 주축」의 전신이 되는「불량 국가」라는 개념에 근거해, 이라크, 이란, 시리아, 수단,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등을 적대시해, 이슬람주의 무장 세력을, 소련을 대체할 수 있는 미국의 적으로 만드는 흐름을 시작했다.

위와같이 90년대는, 미국과 영국 패권의 중심이 군사로부터 경제로 옮겨가, 군산 복합체 세력이 열세에 몰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97-98년의 아시아 통화 위기나, 2000년의 미 IT 주식의 버블 붕괴에 의해, 금융계의 급성장으로 미국과 영국이 금융 패권을 유지하던 냉전 후의 세계 체제가 무너져 내렸다.

01년에 대통령이 8년 동안 계속된 민주당의 클린턴으로부터 공화당(군산 복합체의 옛 터전)의 부시로 바뀌어, 당초는 부시도 민주당의 협조 노선을 계승해「상냥한 초강대국」을 자칭하고 있었다. 그러나 머지 않아 911 사건이 일어나자, 미국의 패권 전략의 중심이 단번에 경제로부터 군사로 되돌아가, 영국 배경의 국제 협조 주의는, 군산 복합체와 이스라엘 배경의 단독 패권주의로 교체되었다.

다시 말해서 911을 계기로, 미 핵심부에서는 패권전략을 둘러싼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911사태로 단독 패권주의 천하가 되었지만, 당연히,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단독 패권주의에 의해 미국은, 군사・외교・경제라는 모든 면에서, 패권국으로서의 힘을 급속히 낭비했다. 90년 말부터 시작된 미국의 금융 붕괴도, 2000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담보 채권 버블의 확대를 거쳐, 07년에「서브 프라임 위기」라는 버블 붕괴가 시작되어, 그것이 08년의 리만 위기로 연결되었고,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붕괴를 전제로, 브레톤우즈 체제의 새로운 편성이, 신설된 다극형 패권 구조인 G20에 의해 제창되었다. (세계가 달러를 버린 날)

911로 부터 13년이 지나 이제 단독 패권주의라는 개념은 낡은 것이 된 분위기가 있다. 오바마 정권은 미국을 국제 협조주의로 되돌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냉전이 국제 협조주의 전략이었다고 하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위기를 만들어 내, 냉전형의 미러 대립을 격화시켜 NATO를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는 것도, 국제 협조주의의 전략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바마 정권은, 패권의 낭비를 막을 수 있도록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미군을 철수했다. 빈 라덴 살해극을 전개해, 원래 선전색이 강했던 명분없는「테러 전쟁」을 끝내려고 획책했다.

오바마 정권은, 911을 기회로 일단 국제 협조주의를 버리고 단독 패권주의로 뛰쳐나온 미국을, 다시 국제 협조주의로 되돌리려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과거의 지점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다. 냉전시에는 미국과 유럽보다 약했던 정세속에서 소련, 중국 등 사회주의 진영은 지금, 인도와 브라질, 이란 등도 추가되어 비미적인 BRICS+ 도상 제국으로서 스스로를 재편・결속해, 미국과 유럽세에 지지 않는 강력한 세력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무조건 미국에 종속되어 소련과 대립하던 독일 등 유럽 제국들도, 이번 우크라이나 위기에서, 러시아와 대립하면 자신들의 경제가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미국의 러시아 적대시에 동조하려고 하지 않는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되고 있는 중국과 본격적 대립하는 것은, 미국조차 바라지 않는다. BRICS의 대국화에 의해, 과거에 있었던 식의 냉전구조의 부활은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미국이 냉전 구조를 무리하게 부활시키려고 하면, 유럽이 배신해 BRICS 측으로 붙든 지, 중립으로 변해 버릴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오바마)이 국제 협조주의를 부활시키려고 시도하면, 그것은 세계의 패권구조를 다극화시키는 것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다.

만약 911과 같은 전환기가 없었고, 미국이 단독 패권주의로 변하지 않고 있었다면, 미국 만이 패권국인 종래의 상태를 유지한 채로, 중국이나 러시아를 새로운 산하에 넣을 수 있는 패권을 유지해, 다극화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냉전 이후, G7에 러시아가 들어갈 수 있도록 G8로 구성한 것은, 바로 그러한 흐름이었다. 거기에 더불어 중국을 끌어 들여 G9로 만들어 안정적으로 운영했더라면, 미국의 패권은 앞으로 백년 정도 더 계속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게 현명한 책략을 취하지 않았다.

지금의 일본인들은 혐중 반중을 강조하는 언론의 선전에 물들어 있으므로, 러시아 뿐만이 아니라 중국도, 미국 패권의 산하에 들어가려고 한 적은 없고, 중국은 미국을 넘어뜨려 패권국이 되는 것만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중국은(부분적으로는 러시아도), 미국이 패권국으로서 강력하게 존재하는 한, 어느 정도는 미국에게 양보해, 친밀하게 해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을 분노하게 만드는 책략을 반복하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의 패권같은 건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시작해 미국 적대시가 강한 푸친과 결속하려는 경향을 강하게 하고 있는 것인데, 중국을 화나게 하는 미국의 책략은, 중러가 결속해 미 패권을 경제면으로부터 무너뜨리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연결되므로, 미국 자신에게 있어서 자멸적이다.

미국이 자국의 패권과 이권을 지키고 싶다면, 중국과 협조해, 일본에게 압력을 가해 반중정책을 그만두게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대미 종속을 국시로 하는 일본 정부는 미국 패권의 영속을 바라고 있지만, 미국과 일본의 중국 적대시책은, 미국의 패권 붕괴로 연결되므로, 대미 종속에 있어서도 자멸적이다. 미국에게 대 중국협조를 주장하고, 일본 자신도 중국 적대시를 그만두는 것이, 정말 애국적인 일본인이 취해야 할 태도다.

미 정계는 911 이래, 호전파에게 장악되어, 지금도 변함이 없다. 차기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 같은 민주당의 Hillary・클린턴은 자신을 가능한 한 호전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고, 공화당의 랜드・폴은 이스라엘에게 바짝 다가가고 있다. 호전적이지 않으면 대통령이나 연방 의원이 될 수 없는 상황이, 지금도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아직 단독 패권주의라는 족쇄(선전)에 매여 있다. (Rand Paul Suddenly Goes Very Silent On U.S. Airstrikes In Iraq)

수수께끼 투성이인 911은, 필시「어둠의 억새풀밭( 명분,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비유)」이다. 실체가 불명( 실은 CIA가 만든 ) 한「거대한 적 알카이다」가, 911을 일으켜 미국에게 선전포고했다고 하고, 거기에 응전해 미국은「테러 전쟁」이란 이름으로 국가 총동원 체제를 구축해 전쟁을 개시했다. 미국은, 타국의 충고를 듣지 않는「단독 패권주의」라는 모드로 자신의 입장을 일시에 바꾼 다음, 어둠 속의「억새풀밭」으로 쳐들어가, 들판의「억새풀」과 싸운다고 선언하고, 이라크, 아프간, 이란, 시리아, 리비아, 북한, 러시아, 중국 등을 차례차례로 적대시했다. 지금 이라크와 시리아에 생겨난 ISIS(이슬람국가)도, 미국 자신이 재배(만든)한 새로운「억새풀」일 것이다. 그런 끝에, 미국은 국력을 낭비하고, 경제면으로도 거대한 버블 팽창에만 의지해 달러의 힘을 유지하고 있다. (쿠르드와 이슬람국의 강요 전쟁)

911로 미국이 자신에게 씌운「어둠의 억새풀밭」이라는 마술은 아마, 머지않아 도래할 달러와 미국채의 버블 붕괴에 의해 풀릴 수 있다. 미국이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달러와 미국채는 힘을 잃고, 미국은 패권국이 아니게 되어, 세계의 패권 구조는 다극형으로 전환해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아직, 연방은행과 금융계(채권발행)에 의한 자금 공급에 의해 버블 팽창이 계속 되고 있으므로, 10년 짜리 미국채의 금리는 위험수치인 3% 보다 훨씬 낮고, 모든 통화에 대한 달러의 환율도 여전히 높다. (The World Financial System Is Rife With "Stimulus" Junkies)

그러나, 버블 팽창이 계속되지 않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지적이, 최근 미국과 유럽의 여기저기로부터 나오고 있다. 달러를 기축통화의 자리로부터 스스로 내려 오는 것이 수출증가로 연결되므로 미국 경제는 끝났다라는 논문이, NY타임즈에 실리고 있다. 911로 시작한 미국의 환각증상에 의한 세계의 혼란은, 가까운 시일 내에 끝나게 될 것이다. (Dethrone‘King Do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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